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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읽을꺼리] 노동역사기행 11 - 85년 ‘민중교육’에서 89년 전교조 결성까지 교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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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민중교육에서 89년 전교조 결성까지 교사운동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당국·언론 말도 안되는 의식화 교사 낙인찍기, 강경탄압에도 교육민주화 깃발 내리지 않아

 

  교사노조는 1960년 제2공화국 때 잠시 활동했다가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무산된 뒤 오래 침묵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충남 일원에서 여러 교사가 해직됐다. 지금의 전국교직원노조는 85민중교육사건부터 출발했다. 19852·12총선 때 야당인 신민당(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킨 직후 보성중 국사교사 심성보 선생 등 몇몇 뜻있는 교사들이 19855민중교육이라는 교육전문잡지를 발행했다. 교사 생활하면서 느낀 교육에 대한 소견을 모은 게 전부였다. 더욱이 문화공보부 납본필증까지 받은 정식 잡지였는데 거기에 자신의 교육적 소신을 밝혔다는 이유로 많은 교사가 해직됐다. 심성보 선생님도 그 중 하나였다.

 

  전두환 정권은 민중교육에 기고한 교사들을 해고하면서 국가공무원법 56(성실의무) 57(복종의무) 60(비밀준수의무) 63(품위유지의무) 65(정치운동금지) 66(집단행동금지) 등의 악법 조항을 들이대면 밥줄을 끊었다.

 

  심성보 선생님은 자기 집에서 자다가 새벽 6시 건장한 형사 두 사람에게 경찰서로 연행됐다. 심 선생님은 경찰서 유치장의 철망을 사이에 두고 아빠를 보려고 바둥거리는 두 살 박이 딸아이의 웃음기 어린 얼굴, 수갑찬 남편을 보면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이 선하다. 며칠간 유치장 신세를 지고나와 집에 오니 할 일이 없었다. 아내는 신문광고를 오려와서 취직하라고 야단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듬해 198651일 교사들은 교육주간을 맞아 참교육을 실현하자는 교육 민주화선언을 발표하고 민주교육실천협의회’(민교협)라는 교육전문운동단체를 태동시켰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민교협의 실질 지도자 유상덕 사무국장(교사)을 어처구니 없게 간첩혐의로 구속시켰다. 그 자리는 해직된 심성보 선생님이 이어 받았다. 이들 해직 교사들은 19876월 항쟁을 거리에서 보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심성보 선생은 해직교사 신분으로 당시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으로 일했다.

 

  뜨거웠던 87년을 보내고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뒤 민중교육사건 해직자들은 1988년 대부분 교단으로 돌아왔다. 심성보 선생님도 쌍문중학교로 복직했다. 심 선생은 19881214일 쌍문중 평교사회를 결성했다. 60여 교사 중 45명이 가입했다.

 

전교조 결성식 사진

 

  1989528일 전국의 교사들이 모여 연세대 학생회관 입구 계단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결성했다. 원천봉쇄라는 간고한 조건을 뚫고 한양대에서, 건국대에서, 연세대에서 결성대회를 치루었다. 전국에서 30여분의 선생님이 구속되고 100여분이 파면, 해임, 직위해제 당해 그 피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전교조는 노태우 정권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지부, 지회 창립이 늘어나고 학교별 분회도 500를 넘겼다. 비록 전남체육고 윤리교사였던 윤영규 위원장이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지만 교육 자주와 민주화를 위한 현장 교사들의 의지는 굳건했다.

 

  노태우 정권은 전교조에 강온 양면의 전술을 썼다. 현장 교사들에겐 강경탄압을, 국민들에겐 언론을 이용한 교사 사회 분열공작을 폈다당시 구로고 수학교사로 재직 중 전국 최초로 전교조 분회 건설해 분회장이 된 김승만 선생님은 “198969일 양달섭 교사 직위해제로 시작된 구로고 분회 탄압은 직간접의 교묘한 방법으로 자행됐다고 회상했다.

 

  서울 도봉구 신방학초등학교는 5학년 2반 담임 최종순 교사를 의식화 교사라는 이유로 19896월 파면시켰다. 최 교사는 전과를 베껴오는 숙제, 산수 책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오기 등의 숙제를 내지 않겠다고 했고 학생들에게 공기놀이를 시켰다는 이유로 의식화 교사로 낙인 찍혔다.

 

  언론은 최 교사를 초등학교까지 침투한 빨갱이 교사라고 보도했다. MBC1989514일 뉴스데스크에 최 교사의 특수교육 방식을 고발한다며 무려 1130초짜리 장시간 리포트까지 했다. 당시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손석희 앵커는 문교부 출입기자가 쓴 이 리포트를 소개하면서 어린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가치관을 갑작스럽게 심어줄 때 거기에는 혼란이 따를 것이고 먼 훗날 그 어린이가 오도됐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져야 될지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일고 있는 파문을 엄효섭 기자가 취재해 봤습니다라고 멘트를 날렸다.

 

  전교조 결성 때 노조 사무처장을 맡았던 신일고 국어교사 이수호 교사도 구속됐다. 이수호 선생님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집에 두고 온 세 아이에게 맘이는 이제 5학년이니 곧 중학생이 될 준비를 해야겠구나. 좀 더 진지하게 차근차근 공부하는 습관을 지금부터 길러야겠다. 한이도 3학년이니 이제 생각이 깊고 넓어질 때가 되었구나. 빛이는 이제 학교에 들어가야 할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할 것 같구나라고 그리움을 가득 담은 글을 남겼다. 이수호 선생은 민주노총을 위원장을 거쳐 지금은 전태일재단 이사장으로 아직도 현역이다. 선생의 큰딸 맘이는 결혼 후 귀촌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