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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읽을꺼리] 조국사태, 진보를 가르다

 

이번 호 <읽을꺼리> 꼭지에서는 최근 가장 큰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조국 사태에 관해 두 가지 입장을 기고받아 게재합니다. 반론과 기고는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읽을꺼리> 꼭지에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은 [e-품] 편집팀(nodonged@gmail.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반대 입장은 (클릭하시면)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조국사태, 진보를 가르다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검찰개혁에 대하여

 

  검찰개혁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데 복잡하다. 장관이 할 수 있는 범위의 개혁은 다른 정부의 다른 장관이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므로, 되돌릴 수 없는 개혁은 국회 입법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차원의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검찰개혁의 핵심은 수사권 분산이다. 검찰이든 청와대든 국회든 재벌이든 모든 권력과 부는 아래로 옆으로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권 분산은 국회 소관이다. 조국이 장관이라서 국회 입법은 더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 싶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한편 특수부 폐지는 서민 삶과 무관한 재벌 및 권력형 비리와 관련된 개혁인데, 오히려 그들에게 큰 선물이 되는 것 아닐까 싶다. 다만 그런 상황이 될 것 같으면 정권이 바뀐 뒤에 다시 복구하면 되니까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하면 될 것 같다.

 

  포토라인 폐지 또한 재벌총수 및 권력형 비리자 등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이들에게 큰 선물이 된 것은 분명한데, 그러함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조치는 권력이 바뀌어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아무리 큰 죄를 짓더라도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사태에 대하여

 

  조국사태는 진보를 가르고 있다. 발화점은 조국사태에 내재돼 있는 상위10% 성채 안의 부정의하고 불공정한 보수-진보의 불평등동맹검찰개혁이라는 두 본질이 조국 프리즘을 통해 상반되게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조국이 칼을 맞아야 하고 하나는 조국이 칼을 들고 있는 모양새라서 그렇다.

 

  발화점은 조기에 진화되고 발화점에서 수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국사태는 진보를 가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00년 이후 한국사회 진보를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었던 가치는 정의와 공정이었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속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의와 공정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동일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조국사태를 통해 그것이 여지없이 깨지고 있다. 아내와 딸과 동생 등 조국 일가의 행위는 명백한 부정의불공정이다. 조국의 가족 문제다. 그런데 진보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진영 내에서 그게 무슨 문제냐는 식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아니 이른바 한국사회 진보에서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에 동의하면서도, ‘조국사태에 내재된 상위 10% 안 보수-진보의 불평등동맹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진 진보 인사들이 조국수호파와 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리고 있다. 조국사태가 진보를 가르고 있다.

 

  지난 역사 속에서도 진보 내부에서는 숱한 갈등과 상처가 있었다. 그러나 그 갈등과 상처는 정의(내포된 평등 포함)와 공정이라는 가치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아닌, 정의와 공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속도와 방식의 차이였다. 바깥에 극우보수라는 더 큰 적이 있었기에, 그것으로 핑계를 대면 그래그래 하면서 다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수 있었던 갈등이고 상처였다. 그러나 조국사태에서 발화된 진보 내부의 논란과 상처는 그것이 아니다. 바깥의 적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는, 조국이 부정의와 불공정의 프리즘이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의 논란이고 상처다. 조국 일가가 정의와 공정을 위배했는데, 한국의 진보를 상징했던 핵심 아이콘이 강남좌파가 아닌 강남귀족(강남좌파가 단순하게 강남에 산다고 호명되지 않듯, 단순하게 부가 많아서 강남귀족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진보 일각은 그것을 옹호하고 있다.

 

 

조국 일가의 불공정에 대하여

 

  한국의 진보는 꼴찌도 행복한 나라를 꿈꿨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먼저 글을 가르치거나 산수를 가르치는 부모가 있으면 교사가 전화해서 "왜 아이들이 함께 배우는 기쁨을 방해하느냐"고 경고를 받는 핀란드 교육 꿈을 함께 꾸었다.

 

  전 세계 진보가 교육에 대해 공유하는 공정의 법칙이 있다. ‘아이들이 교육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한 아이는 부모가 모는 자가용 안에 있다. 한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한 아이는 맨몸으로 서 있다. 한 아이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이것은 불공정이다. 모두 맨몸으로 출발선에 서야 한다. 그리고 휠체어를 탄 아이는 출발선보다 더 앞에 세워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공정이다.’ 그래도 신체 차이 때문에 늦게 도착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에게도 크게 차이 나지 않도록 사탕을 주자는 것이것이 세계의 진보가 가진 공통의 가치다. 조국 일가의 행위는 불공정이고 부정의다. 조국의 딸은 자동차로 달리는 정도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멋대로 날았다.

 

 

한국의 1090 불평등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1090 불평등은 머지않아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상위1% 성채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면서 1090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조국일가의 행위가 부정의가 아니고 불공정이 아니라면, 나머지 99%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10%의 성채 안에 못 들어가고 있는 한국의 총자산 평균 1이하의 90%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김낙년의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2013’에 따르면 상위 10%가 소유한 자산은 무려 66.4퍼센트고, 하위 50% 자산은 고작 1.7퍼센트다. 김낙년은 비중을 잘게 분석했는데, 1상위 0.1%의 자산은 9.2퍼센트, 2상위 0.9%의 자산은 16.8퍼센트, 3상위 4%의 자산은 24.8퍼센트, 4상위 5%의 자산은 15.6퍼센트다. 모두가 평균 이상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을 바깥과 비교해 보자. 상위 10% 바로 아래 중간층 40%가 소유한 자산 비율은 31.7퍼센트다. 총자산의 평균값이 1이라 할 때 이들 40%가 보유한 자산은 0.79. 중산층으로 표현되는 이들의 자산이 평균치보다 적다는 뜻이다. 1090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고 실재를 반영하는 현실이다. 암담하고 허탈하고 끔찍하고 등등 국어사전의 온갖 부정적 수식어를 덧대도 과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상태다.

 

 

다시 검찰개혁에 대하여

 

  서초동 촛불의 손피켓에서 조국수호는 빠져야 한다. 그 구호는 국민에게 진보나 보수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뿐이다. 진보는 조국사태에 내재된 상위 10% 안에서의 보수-진보의 불평등·불공정 동맹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 조국일가를 꾸짖어야 한다. 누구보다 조국이 그것을 자인해야 한다. 그러면서 검찰개혁에 나서자고 해야 한다. 11월로 예상되는 패스트트랙 사법개혁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시점에 조국이 물러나도록 하자고 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래야 진보가 국민에게 불평등·불공정·부정의를 해소하자고 말을 할 수 있다.

 

  진보의 이미지가 50대 태극기부대 이미지로 전환하는 중이다. 진보의 가치인 정의와 공정이 쓰레기통에 처박혀 소각장으로 가기 일보 직전이다. 진보가 놀림감이 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논의와 합의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진보는 갈라져야 한다. 그래야 진보를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