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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읽을꺼리] 좌충우돌 15개월...

 

이번 <읽을꺼리> 꼭지에서는 1년 3개월간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교육원 임진희 사무국장의 복귀인사 겸 육아일기를 올립니다^^. <읽을꺼리> 꼭지에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은 [e-품] 편집팀(nodonged@gmail.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좌충우돌 15개월...

 

임진희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사무국장

 

 

0. 불안의 시작

 

  20181. 벌써 꽉 채운 2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그 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예기치 않게 아기가 들어선 것을 알았고, 그 사실을 안 순간 십여년의 경험이 있었던지라 또 마음이 불안해기지 시작했다. “아기가 또 잘 못 되면 어쩌지?”, “연말연시라 술 엄청 먹었는데...”, “지난주에 몸살기운이 있어서 약 먹었는데 괜찮으려나?” 온갖 걱정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배도 불러오고 이리저리 몸도 쑤시면서도 출산예정일 전까지 사무실에 출근하겠다는 나의 당찬(?) 각오는 2018715일 무참히 무너졌다. 아직까지도 날짜를 잊지 않은 건, 714일 토요일이 교육원 운영위원회가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운영위 전날 밤에 하혈을 조금 해서 산부인과 응급실에 가서 수액을 맞고 다행히 진정이 되어 새벽에 집에 돌아왔고, 컨디션은 괜찮았다. 714일 교육원에 나가 운영위원회를 하고 뒤풀이는 참석하지 않고 집으로 왔는데, 그날 늦은 밤부터 배가 엄청 당겼다. 자세를 달리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새벽내내 자세만 바꿔가며 참았던 것을 일요일 아침에 음식을 챙겨오신 친정 부모님이 보시곤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라며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날의 입원은 결국 4주 뒤 아이를 낳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조기진통이라는 진단을 받고, 3주간을 꼬박 근육이완제를 맞으며 버텼고 이제 집에 가서 누워 있다가 진()진통이 오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의사의 말에, 퇴원 수속을 하던 그때 양수가 터져서 결국 아이를 낳고 5일 뒤 퇴원하게 되었다.

 

  5주나 빨리 나온 아이는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났고, 몸무게만 조금 찌우면 된다는 얘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던 것도 이젠 아주 먼 이야기가 되었다.

 

본문에 들어갈 아기 사진을 달라고 했으나 본인 사진을 주신 진희동지.. 왼쪽 위 사진은 무려 15년 전이랍니다^^; [편집자주]

 

 

1. 걱정을 동반한 설레임

 

  그렇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아이가 태어나고서야 나는 전혀 준비가 안 된 엄마였던 것을 인지했다. 병원에서 퇴원해 산후조리원에 갔을 때까지는 미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데, 조리원에서 집으로 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집에 가서 어떻게 아이를 돌봐야할지 난감함을 넘어 앞이 깜깜했다. 게다가 노산과 3주간의 입원 등으로 온몸이 아팠고, 왼팔은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그나마 노산에 어렵게 출산을 한 딸을 위해 친정엄마가 집으로 와서 도와주시기로 하셔서 그때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오는 날, 조리원 선생님의 도움으로 속싸개에 아이를 단단히 여며 차에 태워 데려오는데 한 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롯이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책임져야 한다는 심정을 그 때 처음으로 느꼈다.

 

아이 아빠를 아시는 분은 놀라실 겁니다! 너무 똑같이 생김! [편집자주]

 

 

2. 서로의 적응기간

 

  집으로 와서 일주일은 무난히 흘러갔다. 아이는 조리원에 있을 때처럼 잘 잤고, 잘 먹고, 잘 쌌다. 그런데 일주일 뒤부터 밤,낮 없이 울기 시작했다. 한 번 울면 3~4시간을 울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이러다가 아이가 경기라도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경기할 지경이 되었다.

 

  친정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백일되면 괜찮을꺼라고 소위 말하는 백일의 기적’(?)을 얘기했고, 그 얘기를 들은 후로는 백일만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백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정확히 5개월까지 엄청 울었다.

 

  내가 엄마라는 이름과 역할에 적응이 필요했던 것처럼, 아이도 세상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은 백일까지 적응을 마치는 것 같은데, 이 아이는 5개월이 걸린 것 같다.

 

동네 허준박물관 나들이도 갔다고 합니다^^! [편집자주]

 

3. ()하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 16개월로 접어들었다.

 

  아이는 점점 사물을 알아가고, 의사표현이 다양해지고 있다. 맘마만 알던 아이는 어응(사자)을 알고, 좋아하는 인형을 갖고 다니고, 본인이 싫은 것에는 아니야를 외친다.

 

  15개월까지 아이와 오롯이 함께한 시간은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아이와 내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였고, 또한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이 시간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더 절실히 느낄 것 같다.

 

  내가 복직하면서 아이 아빠가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아이와 아빠가 서로를 알아가고 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15개월은 법으로 정해져있는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다 15개월을 아이와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두루 배려해 준 교육원 식구들과 박미리 동지가 없었다면, 아이와 나에게 있어 이처럼 소중한 시간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표하고 싶다.

 

지저분한걸 못참고 애기가 직접 청소에 나선다고 ㅎㅎ [편집자주]

 

 

4. 그러나...

 

  육아휴직을 마치고 11월부터 복직을 했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육아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기저귀를 빼고 직접 들어가서 까꿍!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