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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PRISM] 기후위기의 불확실성과 기후행동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 더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위기에 관한 김현우 선생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기후변화의 불확실성과 기후행동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

 

 

  올 여름 우리는 두 달 가까이 지속된 그야말로 역대급 장마를 경험했다. 하긴 이런 평균을 넘어서는 기상 현상이 처음도 아니다. 이제는 한달씩도 안 되는 한국의 봄과 가을,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한강, 더욱 자주 한반도를 찾아오는 큰 태풍 등. 한국 바깥에서도 마찬가지다. 섭씨 40도를 훌쩍 넘는 서유럽의 폭염, 꺼지지 않는 호주의 산불, 중국과 일본의 폭우 소식이 이어진다.

 

  지난 88<기후위기 전북비상행동>“#_비의_이름은_장마가_아니라_기후위기입니다라는 해시태그 달기 캠페인을 제안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상한 기후 현상들이 이제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기후변화의 분명한 신호라는 것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후위기 전북비상행동의 해시태그 캠페인 이미지

  장마가 한창일 동안 텔레비전 뉴스에는 기상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왜 장마가 이렇게 오래 이어지느냐는 질문에 여러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기후위기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고, 인간의 활동이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를 높인 탓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기상전문가들을 대하는 아나운서들의 태도였다. 이들은 이런 기후위기 현상이 앞으로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고, 그렇다면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전문가들은 화석에너지를 쓰는 교통 이용을 줄이고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전환해야 하며 불필요한 산업 활동을 억제해야 한다고 역시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아나운서는 정말 그렇게 해야 하느냐,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느냐 라는 얘기 앞에서 멈추었다. 아마도 그 다음부터는 너무 복잡한, 너무 어려운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소화하기 어려운 크기와 범위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과학적 불확실성

 

  이런 아쉬운 모습이 아나운서의 불성실함 때문이라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기후변화에 내재한 과학적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그렇게 필연적이고 치명적이라고 주장하는 대신에 불확실성을 이야기하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래 그림으로 살펴보자.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의 이유

 

먼저 여기서 확실한 것은 실은 단 하나밖에 없다. 얼만큼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채굴해서 태우면 얼만큼 대기중 CO2 농도가 올라가느냐 하는 것은 계산기만 두드려도 답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410ppm을 넘어선 대기중 CO2 농도가 예를 들어 450ppm이 되면 산업혁명 이후 1도 상승한 기온이 티핑포인트라 불리는 1.5도를 넘어 정확히 몇 도가 상승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영구동토층의 메탄 방출, 극지방 얼음 해빙, 산불로 인한 온실가스 흡수원 축소 등, 기존에 CO2 농도를 중심으로 했던 기후 모델에는 없던 새로운 요소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확률적으로 평균 온도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너무 어려운 이야기일 텐데, 그게 기후변화를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다. 그저 화석연료를 태워서 온실가스가 증가하고 그래서 지구가 온난화된다는 얘기로는 수많은 기후 이상을 충분히 밝힐 수가 없다. 나아가서, 평균 온도가 1.5도를 넘어 2도 또는 3도가 상승하면 해수면 상승이나 풍향 풍속이 정확히 얼마나 변할지도 지리적 또는 환경적 조건의 다양성 때문에 확실히 예측하기 어렵다. 해수면과 바람이 얼마나 변할 때 어느 정도로 사회경제적 영향이 미칠지는 더욱 불확실하다. 그러나 전체의 인과관계와 경향은 분명하며, 정부와 사회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때 최악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더욱 어려운 것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효과마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만큼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를 설치할 때 얼마나 온실가스 농도를 낮출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태양광 패널의 효율과 에너지망 운용에 관련된 여러 요인들이 있고, 전기 에너지 생산 외에도 수송과 먹거리 생산에서 발생하는 더 많은 온실가스 발생이 있다. 시민교육이나 보험 같은 기후변화 적응 정책이 어느 정도로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역시 불확실하다. 게다가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정책을 열심히 수립하여 시행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10-20년 후에나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역시, 아무 것도 안할 경우 기후위기를 줄이는 아무 결과도 낳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기후변화에 내재한 불확실성의 속성이고 운명이다.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할 위협이 다가오고 있지만, 우리는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가능한 한 확실한 행동을 그것도 하루빨리 해야 한다. 자신의 4-5년 임기 내에 효과를 보기 어려운 일에 예산을 투입하고 법률을 제정하고자 하는 정치인은, 특히 한국에서는 극히 드물다. 이렇게 복잡하고 불확실한 측면이 많은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하는 언론 역시 드문 게 당연하다.

 

 

기후변화의 심리학과 정치학

 

  그래서 조지 마셜은 『기후변화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기후변화가 대표적인 사악한(wicked) 문제라고 말한다. 단지 데이터와 논리만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어렵고 사회의 대응을 끌어내기도 어렵다. 때문에 기후변화는 과학 뿐 아니라 심리학과 정치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수많은 기후회의와 기후부정의 논리와 주장들을 넘어 우리는 과학적 진실을 마주하고 행동을 시작하며, 신념의 공동체를 넓혀가야 한다.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처음에 마주했던 장벽도 그런 것이었다. 자신이 배우고 읽은 것들에 따르면 기후위기는 너무도 위중하고 자신의 미래는 암울할 게 분명했지만, 정부와 사회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툰베리는 혼자만의 우울을 벗어던지고 금요일마다 학교를 결석하고 스웨덴 의회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툰베리의 이런 자루를 뚫고 나오는 송곳같은 행동은 기후위기를 조용히 염려하던 그러나 감히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 했던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지난해 9월 세계에서 7백만 명이 함께 한 기후행동으로 이어졌다.

 

  노동운동에서 8시간 노동, 5일 근무,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지금은 상식이 된 많은 것들은 오랜 세월동안 비상식이거나 감히 꺼내기 어려운 이름들이었다. 자본과 지배계급이 그런 명명과 행동을 막기도 했지만, 우리 스스로의 상식도 누군가의 앞선 투쟁과 뒤이은 연대 속에 바뀌어 갔다. 기후위기는 아직 한국 사회의 상식이 아니고,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이 어떤 일인지 우리 중 다수는 구체적인 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기후위기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길었던 장마가 우리의 상식을 조금이나마 바뀌기 시작했다면, 이제 우리의 노동과 기후변화의 문제도 인식과 토론의 장으로 들어와야 한다. 기후위기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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