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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PRISM] 부동산 공화국에서 노동단체가 살아남는 방법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새로운 공간을 준비중인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의 나상윤 이사장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부동산 공화국에서 노동단체가 살아남는 방법

 

나상윤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 이사장

(전)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 상임대표

 

 

지대수익에 의존하는 한국자본주의

 

한국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지대수익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마디로 부동산 공화국이다. 심지어 건물주 되는 것이 아이들의 꿈인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 서민들은 부동산으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주택 마련을 위해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수년간 혹은 수십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임차료 역시 만만치 않다. 자영업 비중이 유달리 높은 한국사회에서 상가 임차비용문제는 사회적 문제가 된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사회운동단체 역시 사무실 임차비용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임차비용을 규제 하는 것을 포함해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의 도입은 진보적 사회운동의 주요과제가 되고 있다.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다. 부동산의 소유주가 되기로 한 것이다. 사적소유가 아니라 공동소유 방식으로 건물주가 되기로 했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공간이전을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

 

지역거점을 기반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확장하고 진보정당의 지역적 토대를 구축할 목적으로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2014315일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2008년 마포민중의집이 출범한 이후 한국에서 여덟번째로 만들어진 강서양천 민중의집의 차별성은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활동가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운영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간나눔과 노동사업, 마을공동체사업, 나눔연대사업, 생활문화사업 등의 주요사업이 모두 노동자, 노동조합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자원과 역량을 배경으로 지역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은 이제는 강서양천지역 시민사회의 플랫폼 역할과 허브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 전경. 1층은 높은 임대료로 수개월째 공실상태이다. [편집자주]

 

그런데 2016년 초 입주한 건물이 매각되고 건물주가 바뀌면서 우리는 공간이전을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혹스러웠지만 당장의 대안마련이 시급했다. 다행히 임차비용을 증액하고 임차기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하지만 중장기적 대안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점공간을 통해 다양한 사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취지를 실현하자면 비교적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에 70평의 공간을 임차했고 그 결과 임차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지난 6년간 지불한 임차비용만 15천만원이 넘어간다. 높은 임차료 부담을 지고 사느니 차라리 대출받아서 건물을 매입하고 이자를 내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건물매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현재 인터넷언론 레디앙을 비롯 전교조 두 개 지회와 빵과그림책협동조합, 강서아이쿱생협이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을 공유하거나 나누고 있다. 여러 단체가 공간을 공유하게 되자 공간이용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공간의 부족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임차료 문제와 더불어 공간의 부족현상은 뭔가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사례조사도 하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모아보고 부동산 물건 조사작업도 진행했다. 부동산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서울에서 단독으로 이런 사업을 벌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생각보다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 내부. 메인 공간인 '신길수홀'에서는 회의가 진행중이었다. [편집자주]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산전수전 다 겪어왔지 않은가? 혼자가 안 되면 여럿이 하면 되지 않을까? 공유공간 마련에 동의되는 단위를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강서아이쿱생협과 빵과그림책협동조합이 적극 호응을 했고,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이 뒤늦게 합류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공간을 빌려 쓰고 있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은 서울본부의 이전계획으로 인하여 새로운 둥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대안을 모색하다가 우리 프로젝트에 합류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3층의 교육원 입구 [편집자주]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은 항상 두렵다. 하지만 누군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

 

건물매입을 통한 공유공간 마련은 그 동안 시민사회나 노동단체가 가보지 않은 길이다. 물론 전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우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포의 시민공간 나루, 광진 공유공간 나눔, 보건의료노조 등에서 공동자산으로 건물을 매입해서 사용하는 유사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시민사회에서는 시민자산화라는 개념이 공론화되고 있다. 사회운동과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공간을 공유할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우리가 매입할 건물은 대지 70-80평 수준, 건평은 40평대, 지하 1층과 지상 4층 수준의 규모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하는 문화복합공간, 1층은 임대용 공간, 2층은 대규모 교육공간, 3층은 공동사무실, 4층은 독립사무실 형태로 예상하고 있다. 건물매입과 그에 따른 각종 조세 그리고 리모델링까지 고려할 때 약 25억원에서 30억원 정도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월 임차비용 몇 백만원을 감당하는 것도 벅찬데 30억원 가까운 재원이 필요하다. 사실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고민이 많다. 하지만 찾으면 어딘가에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전문가단체의 컨설팅을 통해 건물매입의 주체로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공동소유라는 소유권 문제의 해결과 건물매입시 취등록세 등 조세문제를 고려할 때 별도의 법인 설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4개 단체가 조합원으로 참여한 사회적 협동조합 사람과공간의 창립총회가 55일에 개최되었고 법인의 성격이 지역사업형이라서 행정안전부에 설립인가 신청서를 520일 접수했다.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에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4개 단체는 55천만원의 출자금(자본금)을 마련하고 20억원 내외의 대출을 받기로 했다.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은 1억원의 출자금을 분담하기로 했다. 결코 작지않은 금액이다. 4개 단체는 3-4층에 설치될 사무실에 입주하고, 2층 교육공간과 지하의 문화복합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 물론 공동소유자로서의 권리도 부여된다.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사이에 출자금 납부가 필요하고, 빠르면 10월 경에 건물매입 계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게다가 노동운동, 진보운동과는 거리가 먼 자산을 매개로 한 새로운 시도다.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주도하는 공유공간 자산화는 노동교육, 노동문화를 확산하는 지역거점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나아가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의 새로운 길을 찾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