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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PRISM] 예술인고용보험에서 ‘전국민고용보험’의 과제를 보다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 코로나19 위기로 촉발된 전국민 고용보험에 대한 의견을 싣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흔쾌히(?) 글을 기고해 주신 김상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자주]

 

예술인고용보험에서 전국민고용보험의 과제를 보다

 

김상철

예술인소셜유니온 운영위원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의 마지막 회기에 극적으로 통과되었다. 반면 예술인과 동시에 고용보험 적용대상으로 논의되어왔던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자들이 제외하고 또한, 블랙리스트 후속조치의 내용을 담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끝내 폐기되었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 예술인고용보험은 올해 11월까지 시행령 등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예술인고용보험을 둘러싼 쟁점들은 현재의 예술인고용보험이 어떤 맥락을 통해서 공론화가 되었으며 주요한 시기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실제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논의되는 쟁점은 특히 최근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전국민고용보험의 맥락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로자 의제에서 비껴선 예술인복지법

 

  예술인고용보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2008년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주최한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였다. 당시 논의가 중요한 것은 기존 예술인공제회가 예술인 당사자의 자기 기여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한계에서 벗어나 공적 지원을 전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이 주요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는 별도의 예술인복지법의 제정 대신에 기존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하여 예술인에 대한 지위보장과 복지제도 도입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다. 이러던 것이 2011년 초 최고은 씨의 사망사고가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면서 별도의 <예술인복지법> 제정 논의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당시 예술인복지법은 정병국, 서갑원, 전병헌, 최종원 등 4명의 대표발의로 제안된 상태였는데 이 중에서 서갑원 의원 안을 제외한 3명의 대표발의안에 모두 근로자 의제를 통한 고용보험 가입이나 특혜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상 예술인복지법의 제정논의에서 예술인고용보험은 기본적인 사항으로 포함된 셈이다. 하지만 해당 법의 제정과정에서 노동부 등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근로자 의제를 포함한 고용보험 특례 적용에 대한 사항이 빠진다. 법 제정 당시에는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제도의 포함 역시 노동부의 반대로 포함하지 못한 채 2011년 말에 통과되었다. 이렇게 통과된 <예술인복지법>은 사실상 예술인복지재단이라는 기관 설립 외에는 예술인 지위보장이나 사회보장 확대에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법이었다. 이후에 논란이 되니 지속적으로 법개정을 통해서 표준계약서의 적용 등을 보완하지만 애초 근로자 의제를 통해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려다 보니 실효성이 없는 예술인복지정책이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이 바뀐 것은 2017년에 이르러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문재인 정부가 다시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 정책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부터다. 이를 위해 20179월부터 예술인복지TF를 만들어 주요한 과제들을 논의했는데, 이 중 한 가지 의제가 예술인고용보험 논의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새예술정책을 발표하기로 하면서 새예술정책추진단이라는 형태의 기구 내에 예술인복지분과 방식으로 논의가 합쳐져서 논의된다. 해당 TF20179월부터 20181월까지 총 9차에 걸친 회의를 진행했다. 최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시한 안은 근로 계약 관계가 확인되는 일부 예술인들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임의가입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던 예술인복지재단의 사회보험료 지원정책이 매우 낮은 실적인 것을 근거로 의무가입 방식이 제안되었다. 또한 가입대상 역시 근로계약으로 간주할 수 있는 대상 외에 용역계약 및 공모/지원사업 등에 참여하는 예술인들도 대상으로 확대할 것이 제안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2018187차회의에 이르러서야 의무가입 방식이라는 틀을 확인하고 1158차회의에서 가입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2018731일 고용보험위원회는 예술인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고용보험 적용 방안을 심의하고 의결하였다. 해당 발표에는 적용 제외를 최소화한다는 기본원칙 외에 보험료 부담에 대해서도 사업주의 부담 비율을 달리 적용할 수 있으며 24개월 동안 9개월 보험료를 납부한 비자발적 이직자 및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감소로 이직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포함되었다. 다만 출산급여는 포함되었지만 고용안정, 직업능력개발 사업은 제외되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한정애 국회의원 대표발의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2년 동안 해당 법률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루어지지 못했다가 지난 1월부터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장기화되면서 예술인들과 같이 취약한 사회안정망에 놓여 있는 사각지대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사실상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등 떠밀리듯이 20205월에 열린 20대 국회의 마지막 회의에서 <고용보험법> 개정이 주요한 안건으로 다루어질 수 있었지만, 그나마 대상수가 적은 예술인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수정되어 통과되었다.

 

 

개별에서 보편으로, 그리고 그 너머

 

  예술인고용보험의 위치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근로계약이라는 협소한 법적지위하에 종속되었던 고용보험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의 맥락을 고려하는데 도움이 된다. 현행 고용보험제도는 구체적인 계약관계가 있어야 한다, 고용관계의 전속성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기간 동안 고용되어 있어야 하고 해당 기간 동안 고용보험에 기여를 해야 한다와 같은 근대적인 고용계약을 모델로 구축된 제도다. 하지만 노동형태가 급격하게 유연화되는 상황에서 제도는 현실의 노동구조를 쫒아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언제나 가장 시급한 사람들을 뒤에 남겨두는 왜곡이 발생한다. 전국민고용보험 제도라는 요구는 누가 고용보험의 자격이 되는가라는 질문 대신 누구나 고용보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예술인고용보험의 쟁점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몸을 맞추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그래서 계약관계가 아니라 소득기준에 따라 고용보험의 자격을 부여하는 소득기준 전국민고용보험 제도는, 한편으로는 근로소득의 최소기준에 따른 고용보험 제도와 그 이하의 계층에 제공하는 실업부조 제도와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 낮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로서 전국민고용보험 제도의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더 고민을 밀어붙이면 불안정한 노동구조로부터 기업의 부담을 사회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실한 사용자를 퇴출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서 전국민고용보험제도가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시사점은 전국민고용보험 이전에 전국민고용보장이라는 문제설정, 즉 헌법 제32조에서 정하고 있는 국민의 근로의무에 상응하는 국가의 의무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노예가 되는 노동에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노동의 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예술인고용보험은 현행 고용보험제도의 가장 과도기적 형태가 될 것이고 그것의 가장 마지막 형태일 수 있겠다. 분명 비약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사태가 기후위기라는 불가피한 전환의 한 단면이라면, 지금이야말로 비약이 필요한 시기 아닌가. 예술인고용보험제도의 도입 자체가 그와 같은 불규칙적인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예술인고용보험이 참고되어야 한다면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