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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문학

[노동인문학] 노동해방, 오래된 꿈_(20) 구체성, 과학성, 실현가능성 ①

박장현 원장님의 <노동인문학>입니다. [편집자주]

 

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상임교과위원

 

(내가 상업혁명의 역사를 지루하게 추적하고 있는 이유는 봉건주의 농경사회에서 자본주의 산업사회로 이행하게 된 역사적 조건과 추동력을 규명함으로써, 그 이행이 만들어낸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이어서 상업혁명의 연장선 위에서 산업혁명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래의 노동해방 사회로 이행해나갈 조건과 추동력을 규명하기 위한 선결 작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 나의 개인적인 사정이 변하여 선결 작업을 뒤로 미루고, 몇 세기 역사를 건너뛰어, 20세기에 발생한 사회주의 이행사건을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이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을 촉발한 사람으로는 단연 맑스를 꼽아야 할 것이다.) [필자주]
 

구체성, 과학성, 실현가능성 ①

 

맑스는 노동해방 세상을 그린 구체적인 청사진을 남겨놓지 않았으며, 이행과정에 참조할 구체적인 지도도 남겨놓지 않았다. 다만 그의 저작들 여기저기에 미래의 노동해방 사회를 구성할 원리와 그곳으로 이행해나갈 방법에 대한 매우 추상적인 언급만 짤막짤막하게 남겨두었을 뿐이다. 그런 것들을 모아보면 아마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무산자(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혁명을 통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무산자계급 독재를 통하여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철폐한 뒤,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율적인 협동체가 생산을 담당하게 됨으로써, 노동착취도 사라지고 마침내 국가기구도 소멸할 것이다.”

 

만약 맑스가 미래사회의 구체적인 청사진과 이행경로의 구체적인 지도를 남기고자 했다면 아마 그는 이율배반을 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선배 세대 또는 자기 당대의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할 때 사용했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과학성이었다. 초기의 사회주의자들은 노동해방 세상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거나, 이행과정의 구체적인 지도를 그리는 데 열중하였다. 그것이 대중에게 그들의 생각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시몽, 오웬, 푸리에, 프루동 등등을 꼽을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그들을 싸잡아서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했으며, 그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사상을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이처럼 과학성을 강조했던 맑스가 미래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더라면, 그것은 자가당착에 빠지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비과학성은 미래사회의 구체적인 청사진과 이행과정의 구체적인 지도를 그린 데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오웬의 뉴하모니와 푸리에의 팔랑스테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보다 훨씬 앞서서 모어의 유토피아가 있었다.

 

뉴하모니 개념도. &ldquo;플라톤, 베이컨, 토머스 모어가 명령한 원칙에 입각하여 2천 명 공동체를 위하여 디자인&rdquo;이라는 설명문을 달고 있다. 오웬을 추종하여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건축가 위트웰이 오웬의 구상에 따라 설계한 공동체 건물은 2,000명을 대상으로 계획되었다. 공동시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개인 공간은 최소 규모로 매우 소박하다. 세부 구성은 다음과 같다. ① 체육시설, ② 온실화원, ③ 목욕시설 (남녀 각 4개씩), ④ 주방 및 식당, ⑤ 유아&middot;아동&middot;청소년을 위한 학교 (지층은 어른들을 위한 회의실), ⑥ 도서관 및 사무실, ⑦ 무도회장 및 음악실 ⑧ 극장&middot;전시실&middot;실험실&middot;작은 도서관, ⑨ 박물관&middot;도서관&middot;자료실, ⑩ 빵을 굽거나 음식을 제조하는 곳, 빨래방, ⑪ 어린이 식당, ⑫ 시계탑&middot;조명탑&middot;관측소&middot;굴뚝, ⑬ 성인 기숙사 ⑭ 미혼자 및 어린이 기숙사, ⑮ 자연길 산책로, ⑯ 다듬어진 보행로, ⑰ 전체 건물을 연결하는 회랑과 테라스, ⑱ 주방 및 다른 곳으로 물품 이동 통로

 

사회주의라는 말을 처음 발명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오웬은 산업혁명 초기에 자수성가한 공장주였다. 그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털어넣어 지상에서 사회주의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해보고자 했다. 그는 1824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로 건너가서 넓은 땅을 구입한 뒤 동조자들을 모아서 뉴하모니라는 공동체를 건설한다. 뉴하모니 공동체는 자본주의 사회질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다. 사유재산제를 부정하고 공동소유제를 채택했으며, 장년층이 민주적 평의회를 구성했다. 구성원들은 저마다 자신이 노동한 만큼 획득한 신용을 사용하여 공동체 점포에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었다. 노동을 하지 않는 구성원들은 현금으로 그것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아동은 세 살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 전문 교육자와 육아 담당자에게 맡겨졌다.

 

오웬이 마음속에 그렸던 공동체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은 공동체 건설에 참여한 건축가 휘트웰이 그린 개념도를 통하여 생생하게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뉴하모니 공동체가 시도한 새로운 질서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생필품이 부족해서 자급자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며, 특히 노동하는 사람들과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신용제도를 둘러싼 갈등이 심해졌다. 공동소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불만이 나날이 커지자 결국 뉴하모니 공동체는 1828년부터 사유재산을 인정하게 된다. 사유재산제가 다시 도입되면서부터 공동체는 점차 본래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주변 지역에 흡수되어갔다. 오웬은 실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1928년 영국으로 귀국한다.

 
<새로운 산업세계>(1829년)에 삽화로 실린 팔랑스테르

 

오웬이 뉴하모니 공동체를 실험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푸리에는 팔랑스테르공동체를 고안해낸다. 그는 <새로운 산업사회>(1829)에 삽화로 그려넣은 팔랑스테르 개념도를 통하여 그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팔랑스테르는 외부와 단절된 자급자족적 전원공동체이며, 이상적인 규모는 400명 단위의 4개 건물로 구성된다. 1,600~1,800명 규모의 이 공동체는 주식제로 운영된다.

 

오웬과 달리 초기자본이 없었던 푸리에는 공동소유제 대신에 주식제를 도입한다. 각 구성원은 공동체에 출자한 금액만큼 지분을 갖는다. 공동체의 경제활동은 농업과 수공업이 3:1 비율로 수행되며, 그 선택은 구성원 각자의 자율에 맡긴다. 이익은 전체를 12등분 하여, 4/12는 각자의 출자금에 따라, 5/12는 각자의 노동에 따라, 나머지 3/12은 각자의 재능에 따라 분배된다. 팔랑스테르 건물의 시설로는 공동주방, 공동식당, 학교, 유치원, 극장, 펜싱장, 정원, 도서관 등이 있다. 외부인에게는 입장료를 받아서 공동체의 운영비로 사용한다.

 

푸리에는 팔랑스테르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교양 있는자산가 계급에게 호소하기로 마음먹고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공동체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출자하겠다는 교양 있는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팔랑스테르는 계획서로만 남게 된다.

 

그러나 푸리에의 아이디어는 살아남았고, 그것을 본뜬 공동체 건설 시도가 유럽과 미국의 곳곳에서 이어지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시도로는 고댕이 프랑스 기즈에 자신의 공장 노동자들 및 가족들을 위하여 1858년에 건설한 파밀리스테르를 꼽을 수 있다.

 

프랑스 기즈에 건설된 파밀리스테르, 왼쪽에 팔랑스테르를 모방한 거주 및 생활 공간이, 오른쪽에 공장이 있다.

 

청년 맑스가 볼 때,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이론과 실천은 자본의 객관적인 운동법칙을 전혀 모르는, 비과학적인 공상에 불과했다.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달성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변혁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헛된 곳에 소모하도록 이끄는 해로운 제안들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기 위하여 가장 시급한 일은 노동해방의 관점에서 자본의 운동법칙을 규명하는 일이었고, 그 운동법칙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청년 맑스는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도달한 결론은 앞에서 요약한 바와 같다. ‘무산자계급 혁명과 무산자계급 독재를 통하여 노동해방 세상으로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