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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코로나19 사태의 특징과 ‘한국판 뉴딜’의 문제점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에서 새로운 <ISSUE> 꼭지를 준비했습니다. 노동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정책적 이슈를 다루는 꼭지입니다. 지난 호에서 예고드린 대로 모 독자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육아로 바쁘신 홍원표 전 민주노총 정책국장 동지가 정기적으로 글을 써주시게 되었습니다. 반론과 기고, 정기연재 언제나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코로나19 사태의 특징과 한국판 뉴딜의 문제점

 

홍원표

(전) 민주노총 정책국장

 

  지난 311일 세계보건기구(WHO)COVID-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를 세계적 팬데믹(pandemic)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731WHO가 발표한 일일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하루 신규 확진자가 292천여 명을 기록, 코로나19 발생 이후 가장 많은 신규 확진자 수를 기록했다. WHO는 이날 제4차 긴급위원회 회의를 통해 국제적 비상사태 선언 유지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전히 진행, 확장 중이며, 그 종료 시점을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는 이제 세계가 직면한 사회적 위험이 되었다.

 

  사회적 위험 요소로서 코로나19의 주요 특징은 무엇보다 차별과 배제, 불평등을 매개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찰스 위폴로즈 제네바대 경제학교수는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 2,700만 명에 달하는 비보험자들이 대부분 출근을 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여력이 없다면 전염병의 유행과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훨씬 더 악화될 것’(『코로나 경제전쟁』, 매경출판, 2020, 50)이라고 경고했다. 즉 제도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지만 강한 전파력으로 인해 이 피해가 곧 사회 전반에 급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달한 건강보험 체계를 구축하고 있어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는 생각보다 크다. 무상의료운동본부가 2018년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2012~15년 사이 6개월 이상 장기 체납으로 급여 제한된 이들이 무려 405만명(216만 세대)에 달하며, 이들의 평균 체납액은 월 평균 47천원으로 대부분 생계형 체납자들이었다.

 

  건강보험 제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고 해도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할 경우에도 사회적 위험의 크기가 커진다. 심각한 급여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거나, 유급 휴직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감염을 무릅쓰고 일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들이 늘어나면 방역 실패 가능성은 커진다.

 

  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제도에 접근조차 못 하는 이들도 있다. 국적과 체류자격에 강하게 연동된 사회보험 시스템으로 인해 미등록 체류자는 건강보험 시스템에 전혀 접근할 수 없다. 2019년 기준 미등록 체류자는 39만 여 명에 달한다. 시스템 밖에 방치된 이들이 증가하면 방역 실패 가능성은 커진다.

 

  사회문화적 배제도 코로나19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전염병이라는 특성 상, 전파 경로의 확인이 불가피하고, 이는 자칫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노출을 갖고 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심각해질수록, 배제와 혐오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방역 당국에 쉽게 협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정체성의 차이, 종교 신앙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 비율이 높아지고, 방역이 성공할 확률은 줄어든다.

 

  한국의 경우, 이 모든 위험 요소를 심각하게 품고 있는 사회다. 비정규직 비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장시간 노동 등에서 늘 OECD 1,2위를 기록해 왔고, 사업장 이동 제한 등의 독소조항으로 인해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까지 받아 왔다. 난민 인정은 1년에 고작 몇 건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엄격하고, 체류 자격을 획득했다고 해도 국적자와 비국적자에게 보장되는 권리 차이는 천지차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혐오는 다른 소수자 그룹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미 압도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이른바 ‘K-방역이 초기에 성공을 거둔 이유는 역설적으로 차별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해 취해온 이전의 태도와는 달리 코로나19 검진에 있어서는 모든 외국인에 대해 체류 자격을 묻지 않고 검진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이 확산될 당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개인 정보의 공개를 최소화하고 정보공개 기간을 제한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은 방역 당국의 상황 통제 역량을 높이는 데 상당 부분 도움을 주었다.

 

  이는 제도의 한계를 운영으로 보완한 경우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런 행운이 보장될 리 없다. 그렇다면 이후 해야 할 일은 확인된 제도의 한계를 개선하고 보완하는 일이다. 따라서 코로나 이후 추진되는 정책의 제1원칙은 차별과 배제, 불평등 축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의 두 번째 특징은 실업이나 빈곤 등의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과는 달리 환경변화에 따른 위험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수공통 감염병인 코로나19는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자연 서식지 파괴로 인간과 동물의 접촉면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또한 기온 상승과 그에 따른 기후위기는 병원균의 전파와 변형을 촉진하여 팬데믹 발발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실제로 20세기 이후 팬데믹이 선언된 경우는 1918, 1968, 2009년 그리고 2019년 코로나19까지 4번으로, 갈수록 발생 간격이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또 다른 팬데믹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낙관적 기술결정론자들은 비대면 기술의 발달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성 질병의 발발을 낮춰, 팬데믹 시차를 다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가 7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도 비대면 산업 육성 등 디지털 뉴딜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면서 이러한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비대면 기술이 발달하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줄어들까? 기술론자들의 주장처럼 비대면 기술의 발달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일상의 병행가능성을 좀 더 높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방역의 기술적, 기능적측면에서만 사실일 뿐이다. 기술과 기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좌우한다. 예를 들어 콜센터 노동은 이미 수십년 전에 완벽한 비대면 기술을 갖췄지만, 콜센터 작업장을 장악하고 있는 노동조건은 수십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콜센터 집단 감염을 가져 온 것은 낙후한 비대면 기술이 아니라 낙후한 사회경제적 환경이었다.

 

  기술론자들이 파악하지 못 한 더욱 중요한 문제는 코로나19가 환경위기, 기후위기가 가져올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점이다.

 

  전세계 기후과학자들은 대부분 지구의 온난화가 한계에 달했다고 진단한다. 올해도 이미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보고되고 있다. 스페인은 관측 이래 최고치인 42도에 달하는 폭염을 기록했고, 이탈리아는 14개 도시에, 프랑스는 101개 구역에 폭염 비상경보를 발효했다. 북유럽에 위치한 네덜란드는 35도까지, 냉대 지역인 시베리아는 최고 38도까지 기온이 올라가 곳곳에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한국,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는 이례적인 폭우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수재민이 5천만명을 넘어섰고, 인도의 동북부 국립공원은 85%가 물에 잠겼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영하 16도를 기록해 25년 만에 최고 한파를 기록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질병의 확산뿐만 아니라, 각종 새로운 사회적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코로나19는 기후위기가 가져올 각종 재난의 전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코로나 이후 정책의 두 번째 핵심 원칙은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 즉 탈탄소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이 되어야 한다. 코 앞에 직면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한 채 비대면 기술디지털 뉴딜을 통해 경제 성장의 단꿈을 꾸는 것은 그야말로 헤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는격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에는 그린 뉴딜도 포함돼 있으며, ‘탄소 중립 사회 지향의 목표도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한국판 뉴딜 종합 계획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고탄소 산업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에는 체계적인 탈탄소 계획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탄소배출 저감 목표조차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실제 정책 집행은 탈탄소 정책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각국의 에너지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Energy Policy Tracker 홈페이지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한국 정부가 밝힌 에너지 부문 투자 규모는 61.7억 달러에 달하는데, 그 중 79.2%가 화석연료 부문에 대한 투자 계획이라고 한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리는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말이다.

 

  뉴딜은 집중적 재정 투자를 통해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이지만, 단순한 경기 부양책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한국판 뉴딜이 참조하고 있는 미국의 뉴딜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 경기 부양책을 쓰는 동시에 노동자의 단결권과 교섭권,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상한을 법으로 명시했고,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미국의 현대적 사회안전망의 기초를 쌓았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단순한 경기 부양책을 넘어 대공황의 원인이 되었던 자유방임 시장을 제어하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강화하는 일종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이 진정한 전환을 목표로 한다면 코로나19가 던지는 핵심 과제인 불평등과 차별의 해소, 기후위기에 맞선 근본적 사회전환을 담아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뉴딜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도, 전환의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진정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고자 한다면, 노동자 서민을 위한 평등 뉴딜, 기후위기에 맞선 과감한 그린뉴딜로 전면 재수립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