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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재난지원금이 풀려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한 회 쉬고 돌아온 홍원표 회원의 <ISSUE>입니다. 반론과 기고, 정기연재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편집자주]

 

재난지원금이 풀려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홍원표

(전) 민주노총 정책국장

 

 

재난 지원인가 보상인가?

 

  코로나가 한참 진행 중이던 지난해 5월 대법원은 복지부가 삼성서울병원에 메르스 손실보상금 607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지난 해 연말 복지부는 607억원을 지급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물론 이 돈은 우리가 낸 세금이다.

 

  복지부와 삼성병원의 소송 경위는 이렇다. 20155월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고, 당시 정부는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일부 의료기관에 폐쇄 또는 운영정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여기에 협력한 의료기관 176개소에 대해 손실보상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삼성병원이 밀접접촉자 명단을 늦게 제출하여 집단감염의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에서 제외했고, 이에 삼성병원이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한 것이다.

 

  당시 메르스 확산 시기 삼성병원과 복지부의 대처, 그리고 작년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점과 비판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그러한 비판을 소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 손실보상이 이뤄졌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 메르스 때만 있었을까? 아니다, 이번 코로나에서도 손실보상이 이뤄졌다. 지난해 정부는 의료기관 손실보상을 위해 약 7천억원의 예산을 책정했고, 4월부터 10월까지 총 6,715억원을 손실보상으로 지급했다. 이 지급은 매월 이뤄졌다.

 

  지원은 사회적 재난에 따른 피해가 심각하거나 보호가 필요한 계층에 공공재원을 투입해 돕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보상은 정부가 적법한 행위로 국민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 경우 그 손실을 갚아준다는 의미다. 방역 정책 협력을 위해 일상적 진료에 제한을 받은 의료기간에 국가가 지원이 아닌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방역 정책으로 영업이 제한된 다른 업종은 왜 보상이 아닌 재난지원인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여파로 손님이 줄어든 경우라면 지원이 맞을 터이다. 하지만 정부가 영업 정지 또는 제한 정책으로 경제활동을 못 하게 한 경우에는 당연히 보상이 맞지 않는가?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소상공인 문제의 핵심은 보편이냐 선별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보상이냐 지원이냐의 문제다. 공공의 이익(‘방역’)을 위해 국민의 권리를 일부 제한할 수 있다. 그런데 임대료 제한은 재산권 침해고, 영업 제한은 공익을 위한 정당한 권리 제한인가? 똑같은 영업 제한인데 왜 병원은 보상이고 피씨방은 지원인가? 정부 정책으로 직접 피해를 본 당사자가 있는데 도대체 보편과 선별을 따질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선별이기 때문이 아니다. 피해 대상에 따라 비일관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그 기준마저 엉망진창인 것이 문제다.

 

 

재정 지출은 충분한가?

 

  보상이든 지원이든, 재원의 문제는 여전히 핵심이다. 지원 재정은 충분한가라는 문제와 더불어 추가 재정 부담을 누가 언제 어떻게 질 것인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도한 지출이 미래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소극적 재정 운영 역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경기 침체기의 소극적 재정 운영은 하락 경향을 심화·장기화시켜 더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당장은 돈이 덜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불황의 심화로 조세 수입은 줄고 지출 요인은 늘어나 재정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경기 침체 초기에 과감한 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재정 지출이 적절할까? 한국은 지난해 4차례 추경을 통해 60조원이 넘는 예산을 증액했다. 지금까지 기재부는 연간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국가부채를 GDP 대비 40%를 넘기지 않는 것을 재정관리 목표로 삼아 왔었다. 기재부 기준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으나, 어찌됐든 2020년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6%를 넘었고, 국가부채 역시 43.7%를 기록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볼 때 한국의 재정정책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이용해 코로나19 대응 추가지출 규모를 집계한 결과 주요10개국의 평균은 GDP 대비 11.3%였다. 국가마다 코로나 피해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어쨌거나 한국은 3.4%로 세 배 이상 적다.

 

  경제학자들의 제언에 비해서도 턱없이 부족하다. 미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았던 제이슨 퍼먼 교수는 팬데믹 시대 재정 지출이 부족한 것보다는 과도한 것이 낫다고 이야기한다. 피에르-올리비에 구랑샤 UC버클리 교수는 코로나 대응 재정 마련을 위해 GDP 대비 10%~20% 수준의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상황에 단순 대비하면 약 200~300조의 국채를 발행해 코로나 대응 재정으로 쓰라는 말이다.

 

 

재원 마련, 선의인가 의무인가?

 

  재정 지출을 확대했다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메워야 한다는 의미다. 연초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이익공유제를 언급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시의 적절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까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지원사격한 이익공유제가 현실적으로 작동할지, 타당한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코로나 시기 돈을 번 기업을 특정 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현실적 문제는 둘째 치고, 사회 유지에 필요한 정부 재원을 기업의 선의에 의존해 충당한다는 것은 정부의 고유권한과 책임을 망각한 발상이다.

 

  공공 재원은 투명하고 공평한 방식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현대 국가가 갖고 있는 가장 투명하고 공평한 재원마련은 조세다.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은 코로나 시기 돈을 번 기업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도 지울 수 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소득이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세금 부담을 지면된다. 소득 증가가 코로나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정의당이 제안한 재난목적세가 민주당의 이익공유제보다 훨씬 타당하고 현실적이다.

 

  조세 방식은 재원 확충 부담을 시기적으로 분산시킬 수도 있다. 급격하지 않은 (영구) 증세를 통해 재원 충당을 장기간 분산시키는 것이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증세를 통한 일종의 장기 할부다.

 

 

그리고, 지워진 노동자들

 

  재난지원금 지급 논란에서 항상 등장하는 것이 소상공인의 임대료 부담 이야기다. 전국민 대상으로 지급했던 1차를 제외하고, 23차 모두 이들에게 초점을 두고 설계되었다. 집합금지 또는 제한으로 이들 사업장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탓이다.

 

  그런데, 이들 피해 사업장에는 당연히 고용된 노동자들도 있었다. 영업제한으로 사업장이 문 닫은 동안 그 노동자들은 월급을 꼬박 받았을까? 300만원의 지원금을 받으면 소상공인들은 임대료를 먼저 낼까, 급여를 먼저 주게 될까? 이 질문에 우리는 긍정적 답변할 수 있을까? 3차 재난지원금 최대 수혜자는 결국 건물주가 될 것이다. 피해 계층 지원 제도가 오히려 K자 양극화를 촉진하는 역설을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3차 재난지원금에서 노동자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특고·프리랜서, 택시노동자와 장기요양노동자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휴업이나 휴직이 불가피한 노동자의 경우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 국면을 맞아 한시적으로 지원 요건을 완화하고 금액을 상향시키면서, 지원 예산을 전년대비 75배 확충했고, 22천억원(12.17기준)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고용유지지원금은 유급휴직을 전제로 사업주가 지급한 임금의 일부만 지원한다. 방역 방침에 따라 휴업한 사업장의 노동자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무급 휴직이나 해고를 강제당할 수도 있다. 실제는 어땠을까?

 

  재난지원금이 3차례 지급되는 동안 이들에 대한 정부 통계나 설명 자료를 보진 못 했다. 언론 역시 임대료 압박에 시달리는 소상공인 이야기는 많이 다루고 있으나, 거기서 일하고 있는 (혹은 더 이상 일을 못 하는) 노동자에 대한 소식을 전한 곳은 거의 없다. 노동조합은? 지난해 중반 민주노총은 기업 대출 지원의 선제 조건으로 총고용유지를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영업제한으로 피해를 본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우선 지급 문제를 이슈화시키지는 못 했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 코로나 대응 소상공인 정책 대출의 경우 대출금의 60% 이상을 인건비로 사용하고 고용을 유지하면 대출을 탕감해 준다. 대출이지만 사실상 현금 지원이고, 소상공인 지원이지만 고용유지와 임금 지급을 가능토록 설계한 제도다. 독일과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소상공인 지원에 임대료와 인건비 지출의 기준으로 잡고 그에 상응하는 지원을 하고 있다.

 

  정치권이 보편과 선별 지급을 두고 자못 치열하게 다투고 있지만, 정작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그 피해 현실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못 하고 있다. 보편지급이든 선별지급이든 재난지원금 논쟁에서도 이들 노동자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일 뿐이다. 4차 재난지원금이 보편과 선별을 동시에 한다 해도 사회적 목소리조차 내지 못 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혜택이 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다. 노동운동이, 민주노총이 지금이라도 이들을 적극 대변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