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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국민연금, 호명조차 되지 못한 개혁 과제

새 일터에 가셔서 바쁘신 와중에도 칼마감(?)해주신 원표동지 감사합니다. [편집자주]

 

국민연금, 호명조차 되지 못한 개혁 과제

 

홍원표

(전) 민주노총 정책국장

 

노동자를 등 진 개혁(?) 정부

 

  문재인 정부는 출범 전부터 개혁을 천명하고 각종 개혁 조치들을 우선 국정 과제로 선정했다. 하지만, 집권 하반기에 접어드는 이 정부에 대해 여전히 개혁정부라 보기는 어려워졌다. 특히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집권 초기 의미 있는 상승치를 보여줬던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듬해 바로 곤두박질 쳤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실질적인 삭감을 단행했다. 비정규직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 앞에서 불법 유턴했고, 노동시간 단축이 유예에 유예를 거듭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가 미뤄지고 미뤄지는 와중에 수많은 이들이 일하다 죽어갔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대로 서비스 질 향상과 돌봄 노동자 고용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겠다고 했지만, 공적 서비스 확대는 제자리걸음을 했고 유래 없는 코로나 감염 사태를 맞아 돌봄 노동자들은 오늘도 몸을 갈아 넣어이 사회를 유지시키고 있다. 그리고 2020년 정기 국회 막바지, 집권여당이 밤을 새워 통과시킨 노동법은 노동자들에게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더 많이 일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노동자 앞에 놓인 길은 여전히 험난하고, 숲에 내린 어둠은 걷힐 생각이 없는데, 등불은 밝히겠다던 이는 슬그머니 사라진 격이다.

 

 

사회적 대화 결과조차 외면한 집권여당

 

  등불만 들고 사라진 이가 어두운 숲에 슬그머니 버려놓고 간 개혁 정책 중 하나가 전국민의 노후 생활을 결정할 국민연금 개혁이다. 우리 사회 다수가 꼼꼼히 챙겨준 국민연금 개혁 정책을 그 이는 끌러보지도 않고 보따리 채 버리고 가 버렸다.

 

  국민연금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는 현 정부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를 재가동하면서 촉발되었다. 2018년 경사노위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사회개혁 과제 중 하나로 국민연금 개혁을 선정하는 데 크게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경사노위 연금개혁 특위에 참여한 사용자 측은 비용부담을 이유로 시종일관 국민 노후 보장 강화에 반대했다. 16개월간 진행된 논의는 재계의 몽니로 난항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와 시민사회계는 일정한 양보와 타협을 거쳐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고 재정 문제와 국민 부담을 고려해 보험료율을 12%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안에 대해 재계 대표를 제외한 모든 참여자들이 동의했다.

 

  하지만 정부 측 의견을 대변하는 공익 위원들은 단일안 제시로 논의 결과를 정리하자는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결국 각 주체들이 제시한 각가지 안을 나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20198월에 논의를 마무리했다. 결국 노동·시민사회가 제시한 안이 다수안으로, 그리고 재계의 2가지 안이 각각 소수 안으로 제출되었다.

 

  이제 국회로 공이 넘어갔지만, 집권여당과 정치권은 여전히 연금 개혁을 뒤로 미루기만 했다. 노동·시민사회 진영의 다수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은 책임 있는 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야당은 집권여당이 단일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연금 개혁 논의를 무한정 연기했다. 마침내 2019년 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책임 있는 입법논의를 어렵다는 핑계로 입법 논의를 총선 이후로 연기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압도적 우위를 점했지만 그 압도적 우위'를 국민연금 개혁에 할애할 생각은 없었다.

 

 

공적 노후 소득 보장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을 45% 내외를 기록해 왔다. 노인 2명 중 1명은 가난하다는 말이다. 전체 인구의 평균 빈곤율은 15% 내외다. OECD 국가의 평균 빈곤율은 12%보다 낮고, 노인 빈곤율은 전체 빈곤율과 유사하거나 그 보다 낮다.

 

  노인 빈곤율과 유사한 추이를 보이는 통계가 또 있다. 자살률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한 사람이 한국 노인들은 59명에 달한다. 전체 연령의 평균은 25명이다. OECD 평균 노인 자살자는 19명이다. 통상 해외의 경우 젊은 연령층의 자살률이 노인층보다 높다. 한국은 노인층이 압도적으로 높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경제적 이유다. 가난해서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의 평균 기대 수명은 90세에 달한다. 65세까지 일을 한다고 해도 남은 25년의 여생을 보장할 소득이 필요하다. 현실은 더 암담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50세 전후에 주된 일자리에서 떠난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저임금 주변부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 이야기다. 연금이 충분하지 않으니 70세가 넘도록 임계장 노동시장을 전전해야 한다.

 

  더 늦은 나이까지 일하면서도 더 가난하고, 더 가난해서 삶을 포기하는 이들도 더 많은 이유는 부실한 공적연금 때문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노인 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40~60% 사이다. 일해서 버는 소득은 20~40%고 나머지는 20%는 기타 소득이 차지한다. 한국 노인의 소득에서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도 안 된다. 80% 이상은 일해서 채우든, 자식에게 손을 내밀든, (돈이 좀 있다면) 투기를 해서 채우든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글의 삶이다.

 

 

노후 소득 보장은 수백조를 둘러싼 계급 투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좌우를 막론하고 노후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방법이 다르다. 시장주의자들은 개인연금을 강조하다. 각종 보험회사에서 광고하는 연금 상품에 가입하라는 것이다. 개인연금은 돈 있는 만큼 보장을 받는다. 즉 돈 없으면 노후도 없다는 말이다.

 

  번만큼 노후를 대비하라는 시장의 정언 명령 뒤에는 자본의 탐욕이 있다. 현재 연금기금의 규모는 700조를 넘었다. 이후 2000조원까지 늘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공적연금이 줄어드는 만큼 민간보험 시장의 파이가 커질 것이다. 한국정부의 한 해 예산이 550조임을 감안할 때, 이 시장은 자본의 눈을 멀게 하기 충분하다. 호시탐탐 국민연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속내는 날 것이지만, 말은 보다 세련(?)되게 한다. 현 세대가 미래 세대를 착취한다는 것이다. 소득비례 원리에 따르기 때문에 이른바 귀족노동자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금을 깍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경사노위에서 노동계와 시민사회 진영이 제안하고,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민주노총 역시도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방침을 확정한 소득대체율 45% - 보험료율 12% 안이 현 세대, 조직 노동자에게 과연 유리한 방안일까?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을 지속적으로 삭감해 왔다. 1998년 도입 당시 70% 대체율에서 199860%, 2008년에 다시 50%로 삭감하고, 2009년부터 매해 0.5%씩 삭감되고 있다. 그런데 이 대체율은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2008년 이전에 낸 보험료에 대해서는 60%, 2018년까지 낸 보험료에 대해서는 45% 이상을 그대로 적용받고 그 이후 보험료에 대해서만 매해 0.5%씩 줄어든다. 따라서 저들이 손가락질하는 4-50대 대공장 노동자들은 현재 매해 삭감되는 대체율로 피해보는 액수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노동계가 주장하듯 45%로 유지하고 점진적으로 보험료율을 올리면 이들의 부담도 늘어난다.

 

  매해 삭감되는 대체율을 그대로 놔두면 피해가 커지는 계층은 지금의 2-30대다. 2028년 이후에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지금 당장 45% 대체율을 유지하고 모두가 조금씩 더 부담하자는 노동계 안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적정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고, 세대 간 부담을 공유하는 합리적인 방안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현 정부는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정권 초기 개혁 동력과 의지가 있을 때, 그리고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적극적 안을 제시할 때가 호기였다. 2008년 이후 매해 삭감되는 대체율이 45% 밑으로 떨어지기 전에 45% 유지를 선언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개혁의 시기를 완전히 놓친 것은 아니다. 지난 총선 현 집권여당이 180석을 받은 것은 촛불 이후 사회 개혁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의지였지, 집권여당이 잘해서가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바로 국민들의 지지가 있을 때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지지율 관리가 아니라, 그 힘을 원천으로 국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