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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문학

[노동인문학] 노동해방, 오래된 꿈_(25) 적록 동맹 : 공유지와 장애물 ④

박장현 원장님의 <노동인문학>입니다. 아직 분량이 남았지만 [웹진 e-품]이 휴간함에 따라 남은 내용은 다른 기회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주]

 

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교과위원

 

1) 두 가지 새로운 것

1-1) 디지털 기술

1-1-1) 디지털 기술과 정보자본주의

 

지난 30년 동안 생산기술에서 일어난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나는 아날로그 기술에서 디지털 기술로 전환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민주의 황금시대는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이 출현하여 거대한 전환을 예비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아직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고 있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겨우 아기걸음을 시작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극소수 예외를 제외한다면, 모든 기계는 여전히 아날로그 기계였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촉발한 컴퓨터가 발명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초기에 컴퓨터는 주로 군사적 용도로만 사용되었으며, 성능도 주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1951년부터 컴퓨터가 상업화되기 시작한 뒤에도 그것을 도입할 수 있는 곳은 정부 기관 또는 극소수 대기업뿐이었다.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유니박은 모두 합쳐서 46대가 판매되었을 뿐이다.

 

 

유니박,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1951년

 

한편, 최초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가 생산에 투입된 것은 1961GM 자동차공장이었다. 이 로봇은 컴퓨터를 탑재하고 있었지만, 다른 컴퓨터와 연결되지 않은 채 홀로 작동하였다.

 

유니메이트, 최초의 로봇, 1961년

 

1975년 인터넷이 발명되면서 그동안 계산기로만 사용되어오던 컴퓨터는 통신기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도 한동안 군사적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지털 기술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1980년을 전후하여 미니 컴퓨터와 퍼스널 컴퓨터가 등장하여 널리 퍼져나간다. 그리고 1983, 미국 국방성은 인터넷 망을 개방하여 일반인도 접속할 수 있게 허용한다. 1990년 겨울에 등장한 월드와이드웹(WWW)은 인터넷 망에 접속한 사람들이 매우 쉽게 원하는 상대방을 찾아내어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19918, 최초의 웹사이트가 출현한다. 이때부터 모든 기업이, 이어서 일반 대중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여 서로 쉽게 통신할 수 있게 된다. 기계와 기계 사이의 소통도 가능해진다. 디지털 정보기술이 본격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은 이때쯤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이었다.

 

애플II,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 1977년     /     월드와이드웹, 최초의 웹사이트 화면, 1991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세계 정치경제 질서가 요동치던 1990년대, 인터넷의 대중화와 더불어 디지털 기술은 사춘기를 맞게 된다. 이른바 닷컴붐시기이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부터 중국의 선전(深圳)까지 곳곳에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벤처기업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은 사이버 세계에서 실물 노다지를 캘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실물 세계의 엄청난 자본이 사이버 세계로 몰려들었고,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나스닥 종합지수는 400%나 상승한다. 오늘날 이른바 5’로 꼽히는 아마존(1994)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으며, 구글(알파벳, 1998)이 설립된 것도 이때였다. 한국에서는 카카오(1995)와 네이버(1999)가 탄생을 알렸고, 중국에서는 알리바바(1999)와 바이두(2000)가 이름을 올렸다.

 

사춘기란 꿈은 불쑥 컸지만 몸은 아직 덜 자란 시기이며, 열정이 역량을 앞서는 시기이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는 사춘기가 통과해야 할 성장통이었다. 200210월까지 나스닥 지수는 최고치에서 78%나 하락한다. 같은 기간에 아마존의 주가는 95% 하락했다. 대다수 닷컴기업이 거품처럼 사라졌고, 디지털 경제에는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리고 닷컴붐과 함께 몰려들었던 대다수 자본은 다시 아날로그 산업으로 되돌아갔다.

 

꼰대 자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흔히 워렌 버핏이 꼽힌다. ‘투자의 달인으로 통하던 그는 닷컴 젊은이들을 믿지 않았고, 인터넷 사업에 투자하지 않았다. 닷컴붐이 한창이던 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밀물이 빠지면 지금 누가 발가벗고 헤엄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마침내 닷컴버블이 터지자 노회한 버핏은 다시 한번 투자의 달인으로 칭송받게 된다.

 

그러나 버핏은 밀물과 썰물만 봤을 뿐, 해류는 읽지 못했다. 디지털 경제는 심층에서 흐르는 해류처럼 표층의 우여곡절을 무시한 채 꾸역꾸역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경남, 2017, ICT 기업 M&A 현황 및 시사점

 

 

이미 IBM(1924년 설립, 1952년부터 컴퓨터 사업 시작), 마이크로소프트(1975)와 애플(1976)20세기 자본주의 경제의 산업구조 및 자본들 사이의 판도를 재편해나가고 있었다. 닷컴버블 기간에 성장통을 이겨낸 벤처기업들도 빅테크 기업으로 발전해나갔다. 철없는 젊은이들의 도전도 계속되었다. 2003년에는 테슬라가 설립되었고, 2004년에는 페이스북(메타)이 문을 연다. 심층해류는 거품처럼 터지지도 않았고, 밀물처럼 뒤집히지도 않았다. 오늘날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자본들을 30년과 비교해본다면, 그동안 심층해류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흘러왔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는 제조업, 에너지산업, 금융산업 자본들이 시장을 지배한 시대였다. 그와 달리 21세기는 4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한 정보산업 자본이 시장을 주도해나가는 시대이다. 이런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정보 자본주의또는 플랫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디지털 기술이 산업구조와 자본판도를 전환시키고 있는 모습을 실감하기 위하여 스마트폰을 보자.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손바닥 위에 하나씩 쥐고 있는 물건이다.

 

 

1994IBM심슨이라는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것이 곧 지구를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전략분석’(SA)을 따르면, 2021년에 스마트폰 소지자 수가 세계 인구의 절반인 40억 명 선을 넘어서게 된다. 불과 27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파된 것이 있을까? 2019년 말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등장하여 세상을 온통 공포와 혼란에 빠뜨렸다. 20235월에 세계보건기구(WHO)가 종식을 선언할 때까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염시킨 인구는 77천만 명이었다. 만약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고 스마트폰처럼 전파되어나갔더라면 세상을 어떻게 되었을까?

 

심슨은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여전히 무선전화기에 가까웠다. 여기에 질적인 전환을 가져온 것은 2007년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이었다. 그것은 통신수단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거기에는 인터넷, 카메라, GPS, 지도앱이 탑재되어 있었다. 검색, 운전, 배달 등에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그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고, 운송산업과 물류산업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한편, 아이폰에는 외부개발자가 개발한 앱을 설치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2008년에 애플은 애플스토어라는 앱을 아이폰에 탑재한다. 누구나 앱을 거래할 수 있는 글로벌 사이버 장터를 창출한 것이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자 전세계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개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날로그 형태로 존재해오던 수많은 상품이 디지털 파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LP 디스크도 비디오 테이프도 사라지고 디지털 파일로 바뀌었다. 아케이드 게임기와 콘솔 게임기도 사라지고 디지털 앱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이 앱스토어를 통하여 거래되기 시작했다. 음악산업, 영화산업, 게임산업의 구조가 혁명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디지털 기술이 경제에 가져온 변화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변화의 목록을 일일이 나열한다면, 허풍을 조금 보태서, 도서관을 하나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지금도 디지털 기술은 눈알이 돌아갈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저께는 로봇이 출현하더니, 어제는 인공지능이 등장하였고, 오늘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합쳐지고 있다. 내일은 인공일반지능(AGI), 모레는 인공초지능(ASI)이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날로그 기계가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30년 전의 기계와 비교해본다면,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기계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0년 전의 기계는 영혼이 없는 쇳덩이에 불과했다. 작동할 때마다 인간이 영혼을 불어넣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계는 그렇지 않다. 인간이 일일이 부리지 않더라도 저절로 돌아간다. 이미 대다수 기계가 그렇다. 영혼이 탑재된 자동기계이다. 바로 여기에 20세기 기술과 21세기 기술 사이의 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런 뜻으로 디지털 기술 시대를 2의 기계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아날로그 기계와 더불어 시작된 1의 기계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시대라는 뜻이다.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를 쓴 바스타니는 이런 변화를 3차 대변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농경 기술이 농업혁명을 촉발하여 제1차 대변혁을 가져왔고, 기계 기술이 산업혁명을 촉발하여 제2차 대변혁을 가져왔듯이, 디지털 기술이 정보혁명을 촉발하면서 새로운 대변혁을 가져오고 있다는 뜻이다.

 

1-1-2) 디지털 기술의 수수께끼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생산기술이 변하면 생산력이 변하고, 생산력이 변하면 생산관계와 사회질서가 변한다. 농경 기술은 노예제와 봉건제 생산관계와 사회질서를 가져왔다. 기계 기술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사회질서를 가져왔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기술의 대변혁이 경제와 사회의 대전환을 가져오지 않은 곳이 있을까? 트랙터를 옆에 세워두고 여전히 호미와 괭이로 논밭을 뒤집는 사회가 있을까? 스마트폰을 옆에 내려놓고 여전히 손편지를 주고받는 사회가 있을까? 내가 알기로는 없다. 이곳저곳의 정치경제 지형에 따라 전환의 경로와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경제와 문화는 생산기술의 변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상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오늘날 생산기술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살펴봐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디지털 기술은 장차 어떤 생산관계와 정치경제질서를 가져오게 될까? 우리는 어떤 경로를 통하여, 어떤 속도로 거기에 도달하게 될까?

 

이런 의문에 답을 구하기 위하여 우선 눈으로 확인하기 쉬운 현상들을 살펴보자. 생산과정에 투입된 디지털 기계가 노동과정과 고용관계에 이런저런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현상이다.

 

디지털 기계는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에 따라 노동생산성은 높아지고 경제는 성장하는데 일자리는 줄어드는 이른바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아직 인공지능 기술이 본격적으로 생산에 투입되기도 전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을 까먹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4년은 오픈AI, MS 등 빅테크 기업들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기술이 전세계 산업현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 만약 다른 획기적인 변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 앞으로 탈동조화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대다수 주류 경제학자들은 탈동조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기술발달과 경제성장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동조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전에도 그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경제성장과 고용인구의 탈동조화는 이제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문제는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것은 아날로그 기계시대에 형성된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더 이상 작동해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아닐까? 도대체 디지털 기술 속에 있는 무엇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디지털 기술 시대를 맞아 자본주의 경제질서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풀어보고 싶은 수수께끼이다. 이 수수께끼에 대하여 이런저런 대답을 내놓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면 그야말로 백인백색, 천차만별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런 수수께끼에 대하여 아예 관심이 없다.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 기술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아니라면, 관심이 없는 척하는 것일까? 아무튼, 그들은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노동과 인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미래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는다. 뒤에 확인하게 되겠지만, <적을수록 풍요롭다>를 쓴 히켈도 이런 사람들에 속한다.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은 디지털 기술이 18세기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본다. 증기기관의 출현이 산업혁명을 불러일으켰듯이, 컴퓨터의 출현이 그에 버금가는 대변혁을 촉발했다는 뜻이다. <완전하게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를 쓴 바스타니는 여기에 속한다.

 

어느 쪽이 옳을까? 무턱대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디지털 기술 속에 뭔가 새로운 특성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리고 그것에 근거하여 판단하지 않는다면, 어느 편에 서더라도 근거 없는 짓으로 되고 말 것이다. 그게 뭘까?

 

경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 기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추가생산비용을 제로에 수렴시키는 특성이다.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한계생산비용을 제로에 수렴시키는 특성이다.

 

 

모든 디지털 상품의 한계생산비용은 제로이다. 디지털 음악이든, 디지털 영화든, 디지털 앱이든 마찬가지이다. 상품을 개발하여 디지털 파일로 만들 때까지는 비용이 들어가지만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 일단 파일로 만들고 나면 그것을 추가로 생산하는 데는 전혀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복사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윈도우를 사용하고 있다면 컨트롤+V’, 매킨토시를 사용하고 있다면 컨트롤+C’만 누르면 된다. 한국말로 줄여서 복붙이라고도 한다. 더 이상 아무 비용도 들어가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의 이런 새로운 특성이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신자유주의가 바야흐로 절정에 도달해 있을 때 벌써 이런 의문을 품은 선각자(?)가 있었다. 로렌스 서머스(Lorens Summers)는 한국의 IMF 사태를 막후에서 조정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부 차관과 장관을 역임한 뒤 2001년 하버드 대학 총장으로 취임할 무렵, 로렌스 서머스는 닷컴버블이 터지고 나스닥이 붕괴하는 굉음을 듣고 있었다.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방문한 서머스 미국 재무부 장관

 

그해 8월 캔서스 시티의 연방준비은행 심포지엄에서 서머스는 버클리 대학의 드롱(B. DeLong) 교수와 함께 쓴 발제문을 제출한다. 제목은 <‘신경제’ : 배경, 역사적 전망, 질문, 그리고 예측>이었다. 여기서 서머스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경제질서가 출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의 발제문을 요약하면서 발췌해보자.

 

오늘날 신경제를 선도적으로 추동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의 기술발전 속도는 실제로 매우 빠르며, 가까운 미래에도 계속해서 매우 빠를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정보통신산업의 산물인 컴퓨터, 반도체, 케이블, 프로그램은 범용 기술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정보통신산업의 경제적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나스닥의 붕괴는 컴퓨터 산업의 기술발전 속도가 느려져서 발생한 것도 아니고, 나머지 부문의 경제에서 컴퓨터 장비에 대한 수요가 포화상태로 채워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도 아니다. 나스닥의 붕괴는 하이테크 기반 기업의 지배적인 시장지위가 - 상당한 진입장벽이 없는 한 - 수익의 원천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입장벽도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신경제에서는 서로 다른 경제원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상품의 가격이 사회적 평균 한계생산비용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재의 경우 사회적 한계비용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정보상품이 한계비용으로 배포된다면, 소비자에게 판매하여 얻은 수익을 사용하여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영리기업으로서는 정보상품을 창출하고 생산할 수 없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가 정보재 창출에 보조금을 지급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 관료들이 응용연구개발의 방향을 올바르게 선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던 적이 없다.

이처럼 경쟁적이지 않은 상품이 존재하는 신경제에서는 구매자에게 한계비용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도록 강요하는 재산권은 경제의 효율성을 향상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저하시킨다. 그리고 경제적 결정에서 분권화가 아니라 더 강력한 중앙집중화를 가져온다. 경제적 결정이 지적재산권 소유자의 손에 집중되는 것이다.
 
신경제는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에, 그리고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정부가 행동해야 하는 방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시장과 경쟁의 자극이 응용지식을 생산하는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보상품에 관한 한, 우리는 최종소비자가 한계비용 이상을 지불해서는 안 된다는 경제원칙을 준수하는 동시에 시장과 경쟁을 응용지식의 가장 효율적인 생산자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서머스는, 내가 알기로는, 디지털 기술의 수수께끼를 처음 풀어낸 사람이다. 그가 찾아낸 해답은 한계생산비용 제로이다. 서머스는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는 28세 때 하버드 대학 역사상 최연소 종신교수로 임명되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저마다 더 높은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시장경쟁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점점 더 높은 기술을 달성할수록 그들이 개발한 상품의 시장가격은 점점 더 제로에 수렴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유시장에서 상품가격은 한계비용과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디지털 기술 시대에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가장 밑바닥에서 발생하여 성장하고 있는, 전에 없던 새로운 모순이다.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에 디지털 기술 시대 자본주의 기업들의 운명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탈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전환운동이 여기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려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