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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PRISM] 공공의료 확충없이 위드코로나 불가능하다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을 맞아 공공의료의 중요성에 관한 글을 싣습니다. 반론과 기고 언제나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공공의료 확충없이 위드코로나 불가능하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

 

  2년째 코로나19 확산세가 맹렬하다. 1112일자 기준으로 전 세계 25천만명이 감염됐고, 6만명이 사망했다. 백신 접종 인구가 늘어나고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지만 새로운 확산과 돌파감염으로 코로나19 종식 시점은 좀처럼 예측하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여러 나라들이 위드코로나로 전환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들어섰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활동에 기반한 <확진환자 발생 억제 중심 정책>11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에 기반한 <위중증환자 치료 중심 정책>으로 바뀌었다. 우려는 만만치 않다. 위드코로나 전환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할 것이고, 겨울에 접어들면서 5차 대유행이 또다시 닥칠 것이며, 이런 상황이 된다면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렇지만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 이전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건 쉽지 않다. 백신접종률이 높아지고, 치료제 개발·사용을 코앞에 두고 있는 데다 경제회복과 일상회복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드코로나 전환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뤄낼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성공적인 위드코로나 전환을 위해서는 충분한 치료병상 확보, 위중증환자 치료체계 구축, 공공의료 확충, 감염예방과 방역·치료에 필요한 인력 확충, 지속적인 생활 속 감염예방활동, 백신접종률 제고, 치료제 개발과 활용 등의 대책과 조치가 필요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책과 조치는 바로 공공의료 확충이다. 코로나19 확진환자 발생 이후 지금까지 10%도 되지 않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80% 이상을 담당해왔다. 감염병전문병원도 없고, 감염병 전문 의사인력은 물론 감염병 환자 치료인력과 방역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감염병 치료 시설과 장비·물품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 역할을 담당하면서 코로나19 환자 치료 공백을 해결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공공의료 수준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도 없고, 위드코로나시대 감염병 대응에 제대로 대처할 수도 없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공공의료의 한계가 너무나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들의 인력갈아넣기식 희생과 헌신만으로는 더 이상 코로나19 대응이 불가능하고, 코로나19 환자 전담병원 운영을 위해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공공의료 이용 취약게층 일반환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위드코로나로의 성공적 전환을 위해서는 획기적인 공공의료 확충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우선,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사실 2015년에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이미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이 국가적 과제로 등장했고,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위한 법률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설립·운영되고 있는 감염병전문병원은 한 곳도 없고, 무방비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어야 했다. 감염병전문병원은 감염병에 대한 예방과 대비, 분석과 연구, 진료와 검사, 환자 격리와 치료, 감염병 대응인력 교육훈련과 지원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감염병 대응 중추 의료기관이다. 감염병전문병원이 있어야 체계적인 감염병 대응활동이 가능하고, 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위드코로나와 함께 새로운 감염병 대응을 위해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운영은 더 이상 미뤄놓을 과제가 아니다.

 

  전국을 70개 중진료권으로 나누고, 이들 중진료권에 응급환자를 골든타임 내에 치료할 수 있는 응급의료를 포함해 양질의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것 또한 미뤄서는 안 된다. 현재 지역거점공공병원은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합쳐 40여곳에 불과하다. 이들 병원들은 병상 규모도 적고 시설·장비·인력도 취약하고, 진료역량도 부족해 지역내 완결적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로 인해 수도권으로 환자쏠림이 심화하고 지역적 건강불평등이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감염병 대응을 위한 시설·장비·인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이들 지역거점공공병원들은 코로나19 상황이 닥치자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고,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양질의 필수의료서비스 제공과 함께 감염병 대응을 위한 시설·장비·인력 인프라를 제대로 갖춘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조속히 설립·운영함으로써 어떤 감염병이 오더라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감염병 대응 의료체계가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위드크로나는 물론이고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더라도 민간병원과 일반환자들의 희생없이 이들 감염병전문병원과 지역책임의료기관이 최일선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제도와 예산이다. 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운영하고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운영하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과 예산 확충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신종 감염병이 발발할 때마다, 지역간·계층간 의료격차가 조명될 때마다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정부는 늘상 수익성 관점과 비용 부담 측면에서만 접근했고, 그로 인해 공공의료 확충은 정작 국가적 핵심과제로 강력하게 추진되지 못한 채 늘 뒷전으로 밀렸다. 공공병원 신설이나 신축이전은 수익성과 경제성을 잣대로 한 예비타당성조사에 발목이 붙잡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적자 운영을 핑계대며 공공병원 설립과 투자를 꺼렸다. 국고와 지방정부 분담비율 50:50은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로 하여금 공공병원 설립·운영을 머뭇거리게 했다. 공공의료 확충 예산과 양질의 공공병원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은 제대로 편성되지도 못했고, 애써 편성한 예산은 너무나 손쉽게 깎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공공의료 부실이 감염병 대응체계의 부실을 초래하고, 의료재난이 경제재난과 사회재난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구체적 목표와 실행에 나서지 않았다.

 

보건의료노조 공공의료 확충 요구 기자회견 [편집자주]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획기적 전환점은 9.2 노정합의를 통해 마련됐다.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는 13차레에 걸쳐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노정교섭을 벌였고,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총파업투쟁을 불과 5시간 앞둔 92일 최종교섭에서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시기, 방법을 명시한 노정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 내용은 중앙감염병전문병원 2026년까지 설립 완공 권역별 감염병전문병원 4개소를 2024년까지 설립·운영하고 3개소 추가 확대 70개 중진료권에 1개 이상의 지역책임의료기관 2025년까지 지정·운영 400병상 이하 규모의 공공병원 이전신축 및 증축 공공병원 설립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공공병원 설립시 국고 지원 비중 확대 및 지방비 부담 완화 지역거점공공병원의 필수 운영경비 및 공익적 적자 지원 등으로 만약 이 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우리나라 공공의료 확충의 획기적 전환점이 마련될 것이다. 합의서대로라면 더 이상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을 또다시 뭉개거나 지연할 핑계도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새로운 감염병은 취약한 공공의료의 틈새를 끊임없이 공략할 것이고, 새로운 대유행의 먹잇감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와 새로운 감염병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이고 위력적인 무기는 제대로 된 공공의료 확충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면서 코로나19를 제대로 극복하는 위드코로나는 공공의료 확충 없이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