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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PRISM] 아마존의 눈물은 언제 멎을 수 있을까? (上)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미국 아마존 물류창고의 노조설립 투쟁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아마존의 눈물은 언제 멎을 수 있을까?

- 上 -

 

이정인

책방 들락날락 운영위원

 

  올해 초 큰 화제를 모았던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의 노조가입 투표가 무효라는 권고가 나왔다. 아마존이 투표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노조 측의 주장이 정당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과 3월 앨라배마 주 베서머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 5800명의 노조 가입을 두고 진행된 투표는 7381798표라는 큰 차이로 부결된 바 있다.

 

  이번 권고가 최종 결정되면 다시 투표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아마존 측이 항소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재투표까지 가는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아마존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물류창고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화가 막 시작된 상황이다. 이럴 때 그 원조라 할 수 있는 아마존 물류창고의 노조 건설 시도를 되짚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마존의 눈물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베서머에 아마존 물류창고가 들어선 것은 작년 3월이다. 이 도시는 과거 철강도시로 유명했으나 70년대 이후 생산시설이 해외 이전되며 쇠락한 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인구가 27천 명 정도에 불과하고, 주민들의 평균 소득도 낮은 편이다. 아마존은 이런 쇠락한 소도시들에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와, 지자체로부터 큰 혜택까지 챙긴다.

 

아마존 베세머 물류센터

 

  베서머 물류창고가 생기고 몇 달 뒤인 작년 여름 50대 노동자 대릴 리처드슨은 미국노총(AFL-CIO) 산하 산별노조인 소매도매백화점노동조합(RWDSU)에 전화를 걸었다. 그해 여름. 아마존에 대한 비난 여론이 크게 고조되고 있었다. 아마존은 코로나19로 대호황을 누렸지만, 노동자들에게 방역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위험수당과 휴직마저 축소해 원성을 사고 있었다.

 

  아마존의 물류창고의 열악한 상황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마존은 물류창고를 풀필먼트 센터(fulfillment center)라고 부르며 단순 창고 관리가 아니라 온라인 구매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혁신의 중심이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실상은 첨단기술을 통한 감시와 통제로 노동자들을 몰아붙여 이윤을 확보하는 시스템일 뿐이다.

 

  물류창고의 작업대에는 분 단위로 속도를 측정해서 보여주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이 장치는 노동자들이 작업대에서 떨어지는 시간을 일하지 않는 시간(time-off-task, TOT)’으로 기록한다. 작업속도가 느리거나 타임오프태스크가 많은 노동자들은 징계를 받거나 해고된다.

 

  아마존이 이른바 풀필먼트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래, 물류창고의 가혹한 노동조건에 대한 폭로는 끊이지 않았다. 아마존이 물류창고에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거나, 노동자들이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병에다 소변을 본다는 얘기들은 오래전부터 떠돌던 얘기였다.

 

  노동환경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아마존은 몇 년 전 임금을 최저시급의 2배인 15달러(18000)로 인상했다. 이런 임금은 월마트나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보다 나은 수준이지만, 물류창고의 가혹한 노동조건에 대한 보상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상원 청문회에서 화상으로 증언하고 있는 제니퍼 베이츠

 

  대릴 리처드슨과 함께 노조 캠페인에 앞장선 물류창고 노동자 제니퍼 베이츠는 지난 3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화상으로 출석하여, “아마존은 노동자들에게 최저 임금 이상을 준다고 자랑하지만, “그 일들이 정말 어떤지는 말하지 않는다면서, 너무 빠른 속도 때문에 매일 9시간씩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증언했다.

 

  베이츠에 따르면 10시간 근무에 30분씩 두 번 휴식시간이 있지만, 창고가 너무 넓기 때문에 화장실에 갖다 오는 걸로 거의 끝이다. 2만 평이 넘는 3층짜리 거대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모두 물류 전용 (material only)”이라 직원들은 계단만 이용해야 했다.

 

  베서머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불만을 가졌던 것은 이런 현실이었다. 과거 자동차 부품공장에 다녔던 대릴 리처드슨은 물류창고의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에 충격을 받고,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노조 가입을 결심했다고 한다.

 

 

노조로 가는 험난한 길

 

  그러나 베서머 물류창고에 노조를 세우기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극히 불리한 미국의 노동제도와 아마존의 악명 높은 무노조 경영이라는 두 가지 장벽을 넘어야 했다.

 

  미국은 노조 가입이 매우 어려운 나라이다. 대부분 산별 형태로 돼 있는 노조들에 가입하려면 사업장 전체가 투표를 통해 노조에 교섭대표권을 위임해야 한다. 이 투표를 신청하려면 먼저 사업장 노동자들의 30% 이상으로부터 협상 권한을 위임한다는 서명을 받아 노동법을 주관하는 정부기관인 국가노동관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럼 국가노동관계위는 사측과 노조 양편의 주장을 청취하여 투표 여부를 결정하는데, 사측이 고용한 노조파괴 전문 법률가들의 온갖 술수로 투표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껏 투표가 결정돼도 투표가 실시되기까지 회사의 회유와 협박이 극심해서 실제로 노조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고 한다. 그 덕분에 현재 미국의 민간기업 노조 조직률은 6%에 불과한 형편이다.

 

  아마존은 월마트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지만, 두 회사 모두 무노조 경영으로 악명이 높다. 베서머 이전 아마존에서 노조 투표까지 간 사례는 2014년 델라웨어 물류창고가 유일했는데, 아마존은 노조파괴 전문 업체를 고용하여 이를 부결시키는데 성공했다. 이후 미국 내에서 노조 건설 시도는 모두 투표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좌절되었다.

 

  작년 3월 베서머 물류창고를 개장할 때, 아마존은 풀타임 노동자 1500명을 뽑는다고 채용공고를 냈다. 노조는 11월에 베서머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 1500명을 교섭단위로 해서 국가노동관계위에 투표를 신청했다.

 

  그러나 노조 설립 낌새를 눈치 챈 아마존은 채용을 엄청나게 늘리기 시작하더니, 노조가 투표를 신청하자 베서머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5800명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아마존이 제시한 5800명이라는 숫자는 단기취업자는 물론, 현장 의료요원, 안전요원, 훈련 담당 직원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교섭단위의 확대는 투표를 연기시키고, 노조가 확보한 노동자들을 소수화 시키기 위해 노조 파괴 공작에서 흔히 사용되는 책략이다. (미국 노동운동가들은 이런 수법을 두고 물을 탄다(flood)”라고 표현한다.) 예컨대 교섭단위 노동자가 1500명이라면 450명의 서명만 받아도 투표 신청이 가능하지만, 5800명이라면 1700명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조는 이미 1500명 정도의 서명을 확보해 놓았기 때문에 12월 말까지 2000명의 서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아마존은 다시 투표 연기를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이번에는 물류창고 주차장에 투표소를 설치해서 투표를 진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노조는 현장에서 투표가 이루어질 경우, 아마존이 투표를 감시하거나 조작할 여지가 많다고 보고 우편투표를 주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투표는 202128일부터 329일까지 7주 동안 우편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국가노동관계위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서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노조 탄압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