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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읽을꺼리] 비단이의 묘생일기_(1) 가족의 재구성, 인간종과 가족이 되다

이번 호부터 새로운 연재가 시작됩니다. 교육원 조영미 회원께서 보내주시는 고양이 일기입니다. 대박예감! [편집자주]

 

가족의 재구성, 인간종과 가족이 되다

 

글_ 비단(고양이)

번역_ 조영미(평등사회노동교육원 회원)

 

  나는 비단이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 나는 귀염뽀작한 발라당 한번이면 입으로는 “안돼~” 라고 말하면서도 손으로는 이미 간식 캔을 따고 있는, 쉬워도 너무 쉬운 집사와 7년째 살고 있다.

 

비단님 존영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우리집에는 나와 집사 외에 동생 고양이 두 마리와 집사가 하나 더 있다. 본인 말로는 아빠 집사라고 하나 그는 우리 중 맨 꼴찌서열로, 주로 우리의 똥을 치우거나 발톱깎기 털 빗질하기 등을 담당하는 말 그대로 집사. 동생 고양이들이 이 집에 올 때마다 나는 진검승부를 통해 1위 서열을 사수했고, 엄마집사와 그의 서열은 내가 오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인간들의 서열순위는 대부분 멍청한 짓을 많이 하거나 잘못한 일이 많을수록 낮은 서열로 밀려나는 것 같다. 맨 꼴지서열로 밀려난 그를 보면 그렇다. 같은 수컷임에도 엄마집사가 나와 동생들을 대할 때와 그를 대할 때는 하늘과 땅차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필살기 애교 발라당을 그는 벌러덩으로 잘못 하고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단이의 필살 발라당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나의 발라당은 고개를 15도쯤 꺾은 뒤 구르듯 살짝 드러누워 집사와 눈을 맞추는 순간 애절한 눈빛을 발사하며 냐~ 소리와 함께 한번 깜박여주는 것인데 그는 소파에 벌러덩 하고 tv를 보며 연신 눈만 꿈벅거린다. 나의 발라당은 캔뚜껑을 따게하지만 그의 벌러덩은 등짝 스매싱을 부른다. 같이 사는 동생고양이 수컷 두놈에게는 엄마집사가 이뻐해줄때나 간식먹을 때 가끔 경쟁심과 질투가 생기지만 저 덩치 큰 수컷에게는 동정심이 생긴다.

 

한심하게(?) 인간을 바라보는 비단이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우리가 치명적 귀여움을 장착했다면 그는 치명적 분노 유발을 장착하고 태어난 듯하다. 저 인간 수컷은 초록색 병에 들어있는 아주 고약한 액체를 즐겨 먹는데 그 초록색 병이 다 비워질 때 쯤이면 눈치껏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 고약한 액체를 먹으면 멀쩡하던 사람도 맹구로 변하는데 저자가 우리에게 입맞춤, 끌어안기, 부비기 등 정확하게는 강제추행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종들의 법에도 동의를 수반하지 않는 그런 행동은 성추행이라는데 그 법이 아직은 인간종들 간에만 적용될 것이므로 고발하지 못하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더구나 초록병 액체 냄새는 전에 엄마집사에 이끌려 땅콩 수술을 받으러 갔을 때 병원에서 나던 냄새와 아주 흡사해 그때의 빡치던 기억이 되살아나 기분을 더 잡친다.

 

고약한 초록병 액체 옆에 고립된 동생 봄이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동생고양이 둘은 충남에서 태어난 6살된 보리와 김포에서 태어난 2살짜리 봄이다. 보리는 8kg이 넘는 뚱냥이고 종일 먹고 자는게 일이다. 뱃살이 너무 쪄서 응가 후 응꼬 청소에 애를 먹는다. 배 나온 아저씨들이 왜 자기 발톱을 못자르는지 보리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엄마 집사가 어느날, 다들 출근하고 혼자 있게 되는 나를 위해 동생이라며 보리를 데려왔다. 태어난지 3개월정도 된 꼬꼬마 시골 마당냥이로 꾀죄죄한 촌티가 줄줄났다. 나처럼 인간종들에게 강제로 이끌려온 처지가 불쌍해 그루밍도 해주고 사냥놀이와 집사들 다루는 비법도 전수해 주면서 열심히 키웠더니 이젠 제법 번듯한 인물이 난다. 보리는 덩치만 컷지 순딩순딩하고 겁많은 쫄보다. 행동하는거 먹는거는 마동석인데 마동석이 바퀴벌레보고 놀래자빠지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뚱냥이 보리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봄이는 김포 빈집에서 태어난 길고양이다. 어느날 앞 다리가 부러져 고통스러워하는 봄이를 발견한 아빠집사가 구조해 다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시켰다. 집사들은 어린 봄이를 차마 다시 길에 내어놓지 못해 눌러앉게 된 놈이다. 엄마집사는 꽃피는 봄에 왔다고 이름을 봄이라고 지었고 애칭은 춘삼이다. 봄이, 아니 춘삼이 저놈은 나이가 어려서 천방지축 깨방정을 떨며 잠시도 가만히있질 못하고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아주 피곤하고 불쾌한 놈이다.

 

귀염뽀짝 춘삼이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가끔 집사들이 안 볼 때 한 대씩 쥐어패는데 길에서 놀던 놈이라 그런지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대들고 시비거는 멘탈갑이다. 길냥이 출신이라 있을 때 먹자는게 저놈의 신념이고 그렇게 먹어댄 결과 덩치가 보리와 맞먹을 지경으로 커졌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가끔 내가 얻어터질때도 있는데 그럴 땐 내가 절대로 무서워서 피하는게 아니다 엄마 집사가 말려서 내가 참는 거다라고 분명히 말해둔다. (봄이 표정은 별로 믿는 것 같지는 않다)

 

"그만좀 먹지?" / "한판 붙으실라우?"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엄마집사는 가끔 한숨을 쉬며 나는 고양이 한마리 곰 한마리 강아지 한마리 개 한마리와 같이 사는 기분이다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엄마집사가 우리 수컷 네 마리를 왜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인식하는지 알 것도 같다엄마집사는 우리를 대할 때와 아빠집사를 대할 때 표정과 말투가 너무 달라 다중인격이 의심된다. 우리를 대할 때는 비음을 과다하게 집어넣고 혀짧은 소리를 내며 팅커벨처럼 행동하다가도 아빠집사를 대할 땐 갑자기 설국열차의 총리 역을 한 틸다 스윈튼으로 돌변한다. 엄마집사가 출근해서 일 할 때 둘 중 어떤 인격체가 될까 걱정되지만(둘다 정상은 아니므로) 아직 안짤리고 출근하는 걸 보면 최소한 혀짧은 팅거벨이나 틸다 스윈튼은 아닌게 확실하다.

 

뚱냥이가 봐도 엄마는 좀..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아무튼, 난 귀티가 좔좔 흐르는 외모 깡패로서 이 집에 최고 서열로 군림하고 있다. 나는 페르시안 고양이만이 가질 수 있는 에메랄드빛의 크고 동그란 눈과 비단결처럼 부드럽고도 신비한 은회색 털옷을 입은 고혹적인 우아함 그 자체다. 나이 50이 넘은 집사가 흔드는 장난감 낚시대를 쫓기에 내 순발력은 빛보다 빠르고 건전지로 돌아가는 가짜 쥐는 내 사냥 실력에 대한 모욕이다.

 

집사들이 또 시작이다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생긴걸로만 보면 귀족집안에서 금실로 수놓은 꽃방석위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것 같은 나에게도 말로 하자면 하루 반나절이 모자랄 아픈 과거가 있다. 아빠집사가 먹는 그 초록병 투명액체 없이는 차마 못털어 놓을 그 사연은 다음에 해야겠다. 간식먹을 타임인데 집사는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고 참다못한 내가 노트북 자판을 두 번이나 밟고 지나가며 싸인을 줬음에도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평화적으로 안되니 할수없이 노트북 자판를 깔고 앉아 연좌농성에 들어갈 수밖에 없겠다.

 

간식 줘 간식!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간식쟁취 투쟁! 결사 투쟁!  (사진=조영미) [편집자주]
엄마집사가 번역 잘 했냐옹? (사진=조영미)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