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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읽을꺼리] 늦깍이 노조 상근자로 살아가기_ (9) 화장을 고치고 가방 둘러메고 가입서 들고

쟁의로 바쁘신 와중에도 글을 써주신 점진선배님 고맙습니다! [편집자주]

 

화장을 고치고 가방 둘러메고 가입서 들고

 

이점진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세종지부 조직부장

 

 

  아침에 출근하면 할 일이 없어 멍~ 때리고 앉아 있다가 책도 좀 읽고 유튜브도 좀 보고, 점심도 먹고, 오후 3시쯤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평소에 스킨로션도 바르지 않던 내가 조금 단정해 보이기 위해 화장을 시작했다. 머리도 미용실에 가서 짧은 단발머리(최대한 전문가의 느낌이 나게 해달라고...)로 잘라달라고 했다. 내 생에 가장 비싼 가방도 하나 샀다. 집에 있는 가방은 집회 다니느라 배낭밖에 없더라. 셋팅을 하고나니 제법 그럴싸했다.

 

  3시가 되면 머리도 다시 드라이하고, 화장도 하고 가방에 가입서를 넣고 학교로 찾아갔다. 학교에 도착하면 차안에서 교직원들이 퇴근할때까지 무작정 차안에서 기다렸다. 모두들 퇴근할때쯤 그제서야 당직쌤들은 출근한다. 출근하면 바로 학교를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한다. 당직선생님이 문단속을 끝나고 당직실로 들어가셨다고 생각이 들 때 쯤 당직실을 찾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기도하고 어이가 없기도 한 것이, 당직쌤들을 조직하려면 그 직종의 근무형태나 급여수준 처우등에 대해 공부를 먼저하고 만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찾아가 노동조합이 무엇이고 왜 가입해야 하는지 그리고 민주노조가 무엇인지 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말들만 다다다다 쏟아내고 가입서를 들이밀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긴 맞는 말이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진정성이 있었지는 첫 날은 학교 4곳을 돌아다녔고, 덕분에 3장의 가입서를 받았다.

 

  아직도 첫 노조가입서를 받은 느낌은 생생하다.

 

  초등학교에 근무하시는 당직선생님은 보통 저녁 5시에 출근한다. 퇴근은 다음날 7시이다. 14시간동안 학교안에서 근무하지만 근무시간은 고작 6시간정도로 인정된다. 잠자는 시간동안은 학교안에 있음에도 근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즉 잠자는 시간은 휴게시간인데 휴게시간은 본인 맘대로 사용할수 있는거 아님? 그럼 잠은 집에서 자고 오면 되는거 아님? 하지만 그건 안된다는 것이다. 화가 난 선생님과 함께 분노하며 그래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뭐 이런 얘기들을 블라블라~ “가입하시죠? ㅎㅎㅎ

 

  며칠동안 신이 나서 열심히 돌아다니던 중 위기가 찾아왔다. 당직쌤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기에 보수적인 성향인 경우가 많다. 그날도 어김없이 열심히 돌아다니던 중 어느 중학교에 찾아갔다. 몇마디 나누다가 민주노총이라는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른다. “민주노총 새끼들은 모두 빨갱이 새끼들이여. 탱크로 밀어서 죽여버려야 해!”

 

  순간 머리가 띵~~~ . 조금 더 얘기를 나누다 보니 태극기부대 할배였다. 맞짱 뜨며 나두 쌍욕을 할까? 조용히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하필이면 내가 명함을 먼저 줬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용히 네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하고 차로 돌아온 후, 차안에서 혼자 개쌍욕을 한바탕한 후 웃으며 다른 학교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