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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PRISM] 비정규노동운동 관점에서 바라본 한비네 운동의 의미와 성과, 전망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의 비정규직 운동에 관한 글을 싣습니다. 반론과 기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비정규노동운동 관점에서 바라본 한비네 운동의 의미와 성과, 전망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 작년 122일 한비네 10주년 기념 토론회 발제문을 토대로 측약한 내용입니다. [필자주]

 

 

한비네 활동 10년의 소회

 

  내 개인사를 좀 들춰볼까 한다. 2007~8510일의 이랜드홈에버 노동자 파업투쟁 과정에서 해고됐다. 투쟁은 끝났지만 회사로 복직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창립 10주년을 맞은 때였다. 10주년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게 뭐가 있을까 고심하다 어렵게 활동하고 있는 민간노동단체들의 현황을 취합해보자 맘먹었다. 간단한 설문문항으로 전국 17개 센터로부터 받은 내용을 정리해 발표했다. 사실 결과가 단순해 좀 민망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향이 있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단병호 위원장님이 발표 내용이 인상적이라고 말씀주셔서 힘이 나기도 했다.

 

  정규직노조 활동을 하면서 비정규노조 동지들을 만나 현장투쟁에 몰입해온 내 입장에선 지역에서 묵묵히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투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실상을 알게 된 건 신선한 체험이었다. 꼭 노조로 조직화해야 노동운동인 줄 알았는데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배우게 됐다. 이를 계기로 서로 얘기 나누는 자리를 갖자는 소박한 생각으로 노동단체 활동가들이 모였고 지역비정규네트워크 준비위원회를 꾸리게 됐다. 2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약칭 한비네)’가 출범했다. 이후 10년 동안 지방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지자체지원노동센터들(이하 노동센터)이 급증하면서 활동의 폭이 넓어졌고,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이해대변과 다양한 조직화 지원을 성과있게 해온 오늘의 한비네로 발돋움했다. 스스로도 느슨한 네트워크인 한비네가 어떻게 이런 길을 내올 수 있었을까 새삼 되물어보게 된다.

 

 

한비네는 왜 만들어졌을까 : 문제의식

 

  현재도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조조직율은 3%에도 못미치고 작은사업장 조직율은 더욱 열악하다. 불평등 구조를 완화하고 노조 바깥 대다수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조의 역할을 제약하는 조건이 지속적으로 고착화돼왔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성과가 꽤많지만, 1997~8IMF 경제위기 이후 본격화된 현재의 불평등 양극화 구조 아래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 앞에서는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진보정당도 길을 잃은데다 내부혁신이 난망해진 기존 노조운동과 조직노동의 관성으로는 돌파구를 찾기 힘들어졌다. 날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의 사회경제구조 변화 속에서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노조의 사회적 역할 확대와 함께 취약노동계층 권익 신장과 조직화 지원을 위한 새로운 방식과 경로가 필요했다. 한비네가 걸어온 길은 그 경로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한비네 운동의 의미와 성과

 

  비정규노동운동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역에 터잡고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당면한 문제에 천착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한비네 활동가들의 노력은 의미가 적지 않다고 판단한다. 활동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한비네 운동으로 명명하는 것이 더 눈에 띄고 일리있겠다 싶어 그리 서술한다.

 

 

1. 당사자 중심 이해대변

 

  일상적인 고용불안과 차별, 갖은 노동인권 침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일터에서 실질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비네는 노동기본권 및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배제되거나 멀어진 취약계층 노동자, 특히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더라도 결실맺기 힘든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서울의 경우 2021년 한 해 노동상담만 22374, 지난 5년간 노동상담 서비스를 받은 서울시민이 88470명에 이르고, 법률권리구제도 1,049건에 달한다. 상담 직종도 청소, 경비, 주차관리 등 비정규직과 취약계층, 작은사업장 노동자 비율이 60% 내외로 높다. 일터이면서 삶터인 지역을 기반으로 아파트경비노동자 등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공신력과 자원을 활용한 취약노동계층 당사자 조직화 지원과 다자간 상생협약 체결 등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해대변 영역을 넓혀오기도 했다. 한비네는 전국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된 취약노동계층 당사자의 벗이자 곁사람으로 권익 옹호와 개선에 이바지하려고 힘써왔다.

 

 

2. 실사구시 활동방향 : 비정규노동운동 실학파

 

  한비네는 한국사회를 노동자가 주인 되는 사회로 바꾸는 전략적 목표에 공감하면서 현장 취약노동계층 당사자 입장에서는 관심이 없는 비정규직 철폐냐 차별철폐냐 논란을 넘어서서 실제 열악한 처우와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지역과 현장에서 발품팔며 묵묵히 고투해왔다. 새로운 조직화 경로로 추진해오고 있는 노동공제회와 좋은 이웃(안산), 다양한 직종 조직화(광주), 대덕유니온(대전) 등 답정너식 방식을 지양하고 지역과 일터 조건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차근 차근 성과를 거둬가는 지역 기반 조직화 모델을 창출하고 진전시켜오기도 했다.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3. 지방정부 노동정책 활용 및 관여

 

  노동센터들은 근로감독권 등 중앙정부가 독점해온 노동 관련 공적 기능을 지방정부에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틀거리로 각종 조례 제개정과 노동센터 설립을 통해 분담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면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중간지원조직이자 민간위탁기관으로서 노동센터는 예산과 인력을 중심으로 한 지자체의 공적 자원과 노조 바깥의 노동자들과 수월하게 접촉할 수 있는 공신력을 활용하여 노동상담과 시민/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기본으로 정책연구 및 조직화 지원, 시민 인식 개선 홍보캠페인 등 폭넓게 사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서울과 경기도 권역의 지자체에서 시행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본보기로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돼왔다. 최근 감정노동 관련 정책도 기본계획 수립과 조례 제정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돼오기도 했다.

 

 

4. 명품조연 : 노조와 노동센터/단체의 쌍끌이 전략

 

  한비네 노동센터들은 노조와 공조사업으로 아파트경비노동자, 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배달라이더, 플랫폼, 프리랜서 등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 자조 및 조직화, 이해대변 지원을 성과있게 추진해왔다. 초창기 노동센터가 노조 등 취약노동계층 조직화를 주요 사업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노동센터 활동가들의 헌신과 의미있는 성과를 바탕으로 광주를 비롯한 광역 단위 센터에서부터 조직화 사업이 중점사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노동조합과 노동센터가 지속적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으려면 각자의 강점을 잘 반영한 공동사업을 매개로 한 공동성과 사례가 모색되고 축적될 필요가 있다.

 

 

5. 열린 소통과 공조 조직문화

 

  한비네의 사업 기풍은 각 센터가 놓인 조건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잘 하는 사업은 따라배우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과 사업협력을 통해 상호신뢰를 다져왔다. 한비네가 민간비정규운동단체와 지자체지원 노동센터를 아우르는 전국네트워크로 10년 동안 외연을 넓히며 사업을 확장해온 비결은 단일한 위계의 조직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며 지역 현장에 뿌리내린 풀뿌리 사업방식에 있다. 한비네가 소속 단위가 늘어난 전국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상징적 대표성을 가지게 되고, 민간노동단체에서 지자체지원센터 중심으로 재편된 지금 한비네가 지향해온 열린 방식의 네트워크운동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과제로 대두됐다.

 

 

6. 상당한 규모의 상근자(활동가) 결집

 

  90여개 가까이 늘어난 지자체지원 노동센터의 상근자들의 연령대는 1세대 센터장들과 초동멤버들을 제외하면 청년 세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노동운동의 묵은 과제인 세대교체를 통한 새로운 운동주체 양성을 위한 기본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향후 전망

 

  한비네는 전국 단위 교류협력과 사업공조를 중심으로 하는 연대조직에서 광역권역별 지역 기반 공동사업 조직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이를 가장 잘 추진할 적임자로 새롭게 집행부를 꾸리기도 했다. 한비네 내부 논의가 진행되겠지만 대체적인 방향으로는 지역 기반 노동네트워크(서울/경기/대전충남/광주전남/울산경남 등)가 주가 되는 지역네트워크가 모인 전국네트워크로 확대 재편되는 방향으로 발전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업 및 노동시장 구조가 다른 지역별 취약노동계층 당사자 중심의 지원 사업과 권역별/지자체별 노동문제 개선모델 마련을 중심으로 한비네 활동의 무게중심이 이동해갈 것이다.

 

  노동운동의 건강한 잔뿌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한 비정규 문제 개선과 해결을 위해 주력하며 전국네트워크로 10년 동안 활동해온 한비네는 양대노총을 비롯한 조직노동과의 연대 강화와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공적 채널을 활용한 사업영역도 넓혀갈 것이다.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경로도 마다 않고 건강한 운동성과 현장성을 전제로 대안과 방법을 모색하고 더디게라도 실현해갈 것이다. ‘숨은 노동을 찾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연대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꾸는 한비네로 진전해갈 것이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