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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PRISM] 다시 경제공황이 다가온다_ Part.1

이번 호에서는 경제학을 가르치시는 최윤식 선생님의 경제정세 분석을 싣습니다. 흔쾌히 써주시기로 하신 최윤식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글은 두 편에 걸쳐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다시 경제공황이 다가온다

 

최윤식

건국대 경제학 강사

 

금리인상, 통화주의의 계급적 힘

 

씨티그룹을 비롯한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이 최근 내년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며 경기 둔화 (완만한 경기침체)를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17일 (현지시각) 씨티그룹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예측치를 이전의 2.5%에서 2.2%로 0.3% 하향하고 세계 경제가 1년 이내에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이 50%라고 발표했다. 

 

지금 경제전문가들이 향후 경기전망을 어둡게 예측하는 이유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금리인상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당분간 지속될 수 밖에 없다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지난 3월 금리를 0.25%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5월에 0.5%를 더 인상하더니, 다시 6월과 7월에는 각각 0.75% 추가 인상이라는 두 차례의 자이언트 스탭을 단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물가가 잡히지 않자 9월에도 0.75%포인트 안팎에서 또 한번의 자이언트 스탭을 단행하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이처럼 금리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는 거시정책을 경제학에서는 통화주의 긴축정책이라 한다. 그리고 통화주의 정책은 다음의 두 가지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 첫째,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효과적이다. 둘째, 인플레이션 억제가 경기후퇴와 그로인한 실업률 증가를 억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즉, 어느정도의 경기후퇴를 감수하고라도 인플레이션은 반드시 잡아야 하는 더 큰 위험이라는 것이 통화주의가 수행되는 주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다.

 

원래 경제전문가들의 경기 예측이라는 것은 주술사들의 미래 예측보다도 더 나을 것이 없다지만, 지금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경기후퇴의 예측” 만큼은 분명한 근거와 개연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지금 예측되는 경기후퇴란 단순 거시모형에 모두를 고려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많은 시장변수들을 넣어 시뮬레이션한 신뢰할 수 없는 모델링의 결과값이 아니라, 금리인상이라는 ‘의도적 행위’로부터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선택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때리면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나고, 금리를 과도하게 인상하면 경기는 침체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인가?”가 아닌, “경기침체를 감수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금리인상과 경기침체라는 명백한 인과관계에도 불구하고 통화주의가 이 분명한 인과관계로부터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는지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 우선 금리인상이 과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인지부터 살펴보자.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한 지난 3월, 5월, 6월, 7월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각각 전년동월대비 7.9%, 8.3%, 8.6%, 9.1%였다. 연준은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데서 시작해 점차 그 폭을 증가시켜 최근 0.75%포인트 인상이라는 자이언트 스텝을 두 차례나 단행했지만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더욱 거세어 졌다. 즉,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 억제는 당연한 인과관계처럼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현실에서는 분명한 인과성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금리와 인플레이션 사이의 인과관계가 통화주의자들의 믿음과 달리 이처럼 불분명할 수 밖에 없는 것는 그들이 비판해왔던 케인즈주의에서 정부지출의 증가와 경제성장의 관계가 현실에서는 매우 불분명한 것과 정확히 동일한 이유 때문이다. 공급이 위축된 상태라면 정부지출을 증가시켜 총수요를 확장하게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공급위축과 수요팽창 중 어느것이 우세하냐에 따라 경기는 팽창할수도 위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케인즈주의적 정부지출의 증가는 총수요관리정책이기 때문에 경기후퇴가 총공급의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고 그것이 총수요 증가를 압도한다면 정부지출의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뿐 경기회복의 효과는 매우 미미하거나 불분명할 수 밖에 없다. 케인즈주의자들은 정부지출증가가 승수효과라는 공급자극 효과를 통해 경기확대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 수많은 반례들 역시 존재한다. 통화주의자들이 금리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정책에도 이와 동일한 문제가 존재한다. 금리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성공하느냐 역시도 현실에서 공급위축과 수요위축 중 무엇이 우세한가에 달려 있다. 금리를 인상할 경우 대출을 통해 이루어지는 투자수요와 소비수요를 억제함으로써 총수요를 위축시키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총공급을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공급팽창의 효과가 불확실한 수요팽창으로 케인즈주의적 경기부양이 불확실한 것처럼, 공급팽창의 효과가 불확실한 수요억제 만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지는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다.   

 

설령 금리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인플레이션의 억제가 경기후퇴를 감수하면서까지 수행되어야 할만큼 가치우위를 지니는지 역시 논쟁적인 문제다. 즉, 이 문제는 가치평가의 문제이고 따라서 계급적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인플레이션 억제와 금리 인상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금리가 인상되면 당연히 채무자보다는 채권자에게 유리하다. 금리인상을 통해 채권자는 채무자로부터 보다 많은 이자수익을 얻게되고 채무자는 더 많은 이자비용을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억제 역시 마찬가지다. 물가가 오르게되면 일정 이자로 벌어들이는 이자수익의 구매력은 하락한다. 즉, 실질이자율이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유지하면서 금리가 오른다면 이것은 채권자인 금융기관들과 많은 채권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을 괴롭히지만 물가인상률에 상응하는 임금인상률이 따르게 된다면 인플레이션의 고통은 일시적인 적응적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낮은 금리 속에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채권자인 금융기관과 채권을 소유한 자산가들에게는 영구적인 손실을 안겨준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경기후퇴와 실업”이라는 그 어떠한 사회적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금리를 인상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잡아야하는 계급적 이유가 존재한다. 현실경제에서 통화주의가 발휘하는 힘은 그것이 금융자본이라는 신자유주의 이후 가장 강력하게 성장한 자본과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금융자본의 축적방식

 

2차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자본주의 국가들이 거시경제를 관리하는 방식은 지금과 달랐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여 이자소득으로 기생하는 금융을 억압하여 비생산적인 금융자본이 생산-분배-지출의 산업순환으로 유입되게하고 이를통해 끊임없이 경기를 부양하여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러한 축적방식은 고임금과 사회복지를 통해 노동계급의 체제순응을 유도하고 이러한 지출에 기초해 경기를 부양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 전반이 일종의 계급간 타협을 형성했던 것이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겪어오던 지속적인 수익률 압박이 1970년대에 들어서자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케인즈주의적 총수요관리와 금융억압을 통해 자본의 운동을 산업순환 과정에 구속하고 계급간 타협을 유지하는 기존의 방식이 더 이상 어려워졌다. 낮은 수익률로 인해 금융자본은 더 이상 저금리-인플레이션-경기확장의 기조 안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고정환율에 기초해 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제약하던 브레튼우즈체제를 1973년 최종 붕괴시키고 거대 금융자본들은 개별 국가들의 거시정책으로부터 제한받지 않는 자본이동의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전면에 나선 통화주의의 이론적 엄호에 힘입어 당시 연준의장이던 폴 볼커는 1979년 10월 6일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4%포인트나 올리는 ‘토요일 밤의 학살’을 감행하며 신자유주의라는 금융자본 주도의 새로운 자본주의 축적체제 구축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금융자본은 더 이상 산업순환으로 유입되어 이윤의 일부를 이자수익으로 수취하는 방식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이들은 산업순환으로 유입되기 보다는 자산시장을 부양하여 부동산과 채권 등의 자산가격을 상승시켜 축적함으로써 금리변동에 의한 제한성까지도 탈피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금융자본은 낮은 금리를 통해 대출을 확대하고 증가한 통화를 자산시장이 흡수함으로써 자산가치를 증식한다. 자산시장에서 팽창한 자본은 경기를 자극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만성적인 고용불안을 야기하여 노동계급의 임금협상력을 약화시켜 산업자본의 수익률까지도 함께 개선하게 된다. 폴 볼커의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는 살인적 고금리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축적은 낮은 금리 하에서 자산시장을 부양함으로써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 성장이 둔화되어 총수요가 제한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자극은 미미했다)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자본축적은 노동계급의 지속적인 몰락과 세계적 양극화 위에서 진행되어 왔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