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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문학

[노동인문학] 노동해방, 오래된 꿈_(9) 불평등 : 루소의 사회계약폐기론

박장현 원장님의 <노동인문학> 입니다. [편집자주]

 

노동해방, 오래된 꿈

 

박장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원장

 

불평등 : 루소의 사회계약폐기론

 

자연상태는 전쟁상태가 아니라 평화상태였다!” 루소의 이 명제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전쟁상태는 홉스가 절대주의 사회계약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유일한 논거였다. 루소는 그 논거를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시계공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루소, &lt;고백&gt; 삽화

 

이어서 루소는 로크의 자유주의 사회계약론을 반박하고 나선다. 공격은 소유권 이론을 정조준하였다. 소유권 이론은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로크를 따르자면, 소유권은 인간의 자연적 권리에 속하며, 모든 인간은 저마다 노동을 통하여 소유권을 실현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이미 자연상태에서도 사유재산이 존재했으며, 화폐의 도입과 더불어 재산의 축적과 불평등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로크가 볼 때, 사유재산은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유재산을 두고 인간들 사이에 분쟁과 전쟁이 생겨날 수도 있으므로 사회계약을 통하여 그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사회계약을 통하여 설립되는 자유주의 국가의 가장 큰 임무는 물론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

 

소유권은 자연권이 아니다!” 루소가 내세운 이 명제는 자유주의 사회계약론을 뿌리부터 뒤집어엎자는 것이었다. 만약 소유권이 로크의 말대로 자연적 권리라면, 인간은 그것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킬 수도 없고, 소멸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역사 속에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다시 역사 속에서 인간에 의해서 폐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로크의 소유권 이론을 정면으로 공격한다.

 

‘사적 소유’의 관념은 인간 정신 속에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이 관념은 순차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선행 관념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연 상태의 마지막 시점에서 [형성된 것이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1)

 

루소를 따르자면, 소유권은 자연적 권리가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다. 그것은 자연상태의 마지막 시점, 또는 같은 말이지만, 문명상태의 시작 시점에서 발생하였다. 루소가 소유권 발생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는 대목을 보자.

 

인간의 첫 감정은 자기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첫 배려는 자기보존을 위한 배려였다. 땅에서 나는 산물은 인간에게 모든 필요한 도움을 제공했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 그것을 이용했다. 굶주림과 기타 욕구들이 그에게 그때마다 다른 생활방법을 경험하게 하였으나, 그 중 인간에게 자기 종족을 영구히 존속시키도록 촉구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애정의 감정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던 이 맹목적인 성향은 순수하게 단 하나의 동물적인 행위만을 만들어냈다. 욕망이 채워지고 나면 암컷과 수컷은 이미 서로 상대방을 기억하는 일도 없었다. 아이들마저도 어미 없이 살 수 있게 되면 곧 어미와의 애착 관계는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처음 태어난 인간의 상태였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1~102)

 

루소를 따르자면, 태초에 인간은 두 가지 본능을 타고났다. 자기보존 본능과 종족보존 본능이다. 그리고 사자처럼 무리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호랑이처럼 단독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경험을 통하여 차차 무리생활이 유리하다는 관념을 형성해나갔다.

 

처음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류인간들에 대해서도 거의 교류가 없었다. 그럼에도 동족을 잊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공통된 이해관계를 위해서 동족의 도움에 의존해야 할 경우와 경쟁을 위해서 그들을 경계해야 할 경우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경우, 그는 동족들과 마치 가축의 무리처럼 결합하든가, 최소한 일종의 자유로운 협동을 통하여 결합했다. 그 협동은 아무도 구속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만들어낸 일시적인 욕구가 존재하고 있는 동안에만 지속했다. 두 번째 경우, 각자는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되면 폭력에 호소하였고, 자기가 약하다고 느끼면 수단과 지략을 써서 자기의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약속과 그것을 실행하는 일의 이익에 대해 개략적인 관념을 획득할 수 있었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3~104)

 

무리생활이 발전하면서 언어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원시적 생산기술을 개발하면서 마침내 인간은 수렵채취 시대를 끝내고 농경목축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유랑생활을 끝내고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를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흔히 농경혁명의 시기라고 부른다. 루소를 따르자면, 바로 이 시기가 자연상태의 마지막 지점인 동시에 문명상태의 시작 지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가족, 사유재산, 국가가 생겨나게 된다.

 

[앞서 얘기한] 초기 진보 덕분에 인간은 더 빠른 진보를 하게 되었다. 정신이 계몽되면서 점점 삶의 수단이 개선되었다. 마침내 사람들은 튼튼하고 잘 드는 돌도끼를 발명했다. 뒤이어 사람들은 점토나 진흙으로 다져서 움막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것이 바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일종의 사유재산을 도입한 최초의 혁명시대이다. 아마 그 사유재산은 이미 다툼과 싸움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
이제 모든 것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숲속을 헤매며 돌아다녔던 사람들도 보다 안정된 장소를 얻었으므로 점차 서로에게 다가가서 여기저기 떼를 지어 결합하게 되고, 마침내는 각 지방에서 독특한 국민을 형성하게 된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5~106)

 

바로 이 시기에 첫 번째 사회계약이 맺어진다. 계약의 내용은 국가의 설립과 소유권의 도입이다.

 

어떤 토지에 말뚝을 박고 “이것은 내 것이다” 하고 선언하는 일을 생각해내고는, 그 말을 그대로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들을 찾아낸 최초의 사람이야말로 정치사회(국가)의 창립자였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1)

 

로크와 마찬가지로 루소는 노동을 소유권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러나 로크와 달리 루소는 소유권을 자연으로부터 타고나는 권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권리로 보았다. 사회계약을 통하여 비로소 사유재산권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회계약의 첫 번째 내용은 경작을 위하여 점유한 토지에 대하여 사적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제 막 생겨난 ‘사적 소유’ 관념이 손으로 하는 노동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만큼, 그것의 기원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만들지 않은 자연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간은 자기 노동 이외의 무엇을 거기에 보탤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작자에겐 그가 경작한 토지의 산물에 대한 권리를 준다. 따라서 토지에 대한 권리를 적어도 생산물을 수확할 때까지 갖게 만들고, 해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노동뿐이다. 이런 일이 계속적인 점유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쉽게 사적 소유로 바뀐다. ... 이처럼 토지 분배가 하나의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연법에서 생기는 권리와는 다른 사적 소유의 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13)

 

그런데 사유재산권의 도입은 평등세상을 불평등세상으로, 평화상태를 전쟁상태로 전환시키게 된다. 여기서 루소는 로크와 다른 길을 걷는다. 로크는 사유재산권이 아니라 화폐의 도입이 불평등을 낳은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에 반하여 루소는 사유재산권 그 자체가 불평등을 낳은 원인이라고 본다.

 

사람들의 재능이 평등하여 이를테면 금속의 사용과 식료품의 소비가 언제나 균형을 이룬다면, 사람들의 관계는 이 상태에서 늘 평등한 채로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이 균형은 무엇에 의해서도 유지되지 않았으므로 얼마 가지 않아 깨져버렸다. 힘이 센 사람은 가장 많은 일을 하였고, 재치 있는 사람은 자기 일을 교묘하게 이용하였으며, 영리한 사람은 노동을 생략하는 수단을 발견한 것이다. ...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수확이 많았고, 어떤 사람은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자연적 불평등은 사회적 결합에 의한 불평등과 함께 은연중에 점점 더 심해졌다.
참된 필요성이 아니라 탐욕스런 야심이, 타인 위에 서기 위해서 저마다 재산을 늘리려는 열심히,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경향을 불러일으켰다. ... 한편으로는 경쟁과 적대감, 또 한편으로는 이해관계의 대립, 언제나 타인을 희생시켜서 자기의 이익을 얻으려는 숨은 욕망, 이런 모든 악이 사유재산제로부터 나왔으며, 점점 커져가는 불평등과는 떼어 놓을 수 없었다.
상속 재산이 수에 있어서나 범위에 있어서나 증대하면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더 이상 자신의 재산을 확장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 그곳에서 사람들의 갖가지 성격에 따라 지배와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자는 지배하는 쾌락을 알게 되자 곧 다른 모든 쾌락을 업신여겼다. 그리고 새로운 노예를 소유하기 위해 이웃 사람들을 정복하고 예속시키는 일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 강자의 권리와 최초 점유자의 권리 사이에 끊임없는 분쟁이 생겨났고, 그것은 투쟁과 살해로 끝이 났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10~116)

 

루소가 볼 때, 바로 이 시기에 첫 번째 사회계약이 맺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계약은 실은 이미 많은 재산을 차지하고 있던 부자들이 꾸며낸 사기계약이었다. 홉스의 사회계약도 바로 이런 사기계약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약탈이라는 공통의 희망으로 단결된 적에 대항해서 부자는 자기 동족을 규합할 수 없었다. 서로 간의 질투심 때문이었다. 그는 필요에 쫓겨서 마침내 전부터 인간의 정신에 파고들었던 것들 중 가장 깊이 고려된 한 가지 계획을 생각해내었다. ... “약한 자들을 억압으로부터 지키고 야심가를 억눌러서, 각자에게 속하는 소유를 각자에게 보증하기 위해서 단결하자! 정의와 평화의 규칙을 세우자! ... 우리의 힘을 우리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향하게 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의 최고 권력으로 집중하자!” ... [부자의 선동을 좇아서] 누구나 자기의 자유를 확보할 목적으로 자기를 얽어매게 될 쇠사슬을 향해서 달려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제도의 이익을 느낄 만한 이성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위험을 내다볼 만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
사회와 법률의 기원은 이런 것이었다. 아마 이런 것이었으리라. 이런 사회와 법률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멍에를, 부자들에게는 새로운 힘을 주어서 자연의 자유를 영원히 파괴해버렸다. 또 사적 소유와 불평등의 법률을 영원히 고정시키고, 교묘한 찬탈을 통하여 취소할 수 없는 권리를 만들어서 일부 야심가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뒤 전체인류를 노동과 예속과 빈곤에 굴복시킨 것이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17~118)

 

 

앞서 얘기했듯이, 루소의 첫 번째 천재성은 그가 자기보존 본능에 더하여 공감 본능을 인간의 본성으로 발견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때까지 자유주의자들도, 계몽주의자들도,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때까지 자유주의자들과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을 생각하는-동물로만 보고 있었다. 그에 반하여 루소는 공감 본능이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을 생각하는-사회적-동물로 볼 수 있었다. 자유주의자들과 계몽주의자들이 인간을 이원론적 존재로 파악했다면, 루소는 인간을 삼원론적 존재로 파악했던 것이다.

 

빛은 입자일까 파동일까? 다시 이 문제에 빗대어 표현해보자. 자유주의자들이 볼 때, 인간은 본래 입자로만 존재하고 있다. 개인들이 서로 관계를 맺도록 해주는 것은 계약뿐이며,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그들은 저마다 하나의 고립된 원자로 존재할 뿐이다. 그들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합리성을 타고났지만, 사회성과 공감능력은 타고나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사회성과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을 심리학에서는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이 용어를 빌려와서 표현하자면, 자유주의자들과 계몽주의자들이 상정했던 개인은 저마다 사이코패스였다.

 

그에 반하여 루소가 볼 때 인간은 본래 입자인 동시에 파동으로 존재하고 있다. 달리 말해서, 개인은 독립된 원자인 동시에 무리의 구성원(構成員)으로 존재한다. 공감 본성은 모든 인간이 자연적,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약을 맺지 않더라도 모든 개인은 저마다 공감이라는 파동을 통하여 다른 개인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개인들로 사회가 구성되는 원리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럴 것이다. 무리를 구성하는 것은 독립적인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인간원자들이다. 그들을 연결시켜주는 끈은 파생적 요소가 아니라 본원적 요소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연결시켜 무리를 형성하기 위해서 초월적 존재나 인위적 계약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개인들이 존재하고 있듯이, 무리도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이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정의한다는 것은 이처럼 인간을 입자인 동시에 파동으로 본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루소의 두 번째 천재성은 그가 인간본성론을 역사발전론과 융합해낸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세계에는 역사가 없다. 홉스와 로크는 자연상태를 상정한 뒤 거기서 문명상태로 이행하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마치 역사발전을 인정하는 체했다. 그러나 루소가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그들은 미개인에 대하여 말하면서 실은 사회인을 그렸을 뿐이다.” 그들이 묘사하고 있는 자연인은 실은 이성(합리성, 이기심)만 진화되고 공감본능은 퇴화된 자유주의-자본주의 현대인이다. 그 결과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역사는 현대에서 시작해서 현대로 끝난다. 그들의 역사에는 과거가 없기 때문에 미래도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본주의로 물들은 인간의 모습을 인간의 자연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양한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역사의 발전을 믿는다는 것은 역사를 과거-현재-미래로 나눈다는 것을 뜻한다. 루소는 역사를 그렇게 나누었다. 과거는 자연상태였으며, 그가 살았던 현재는 절대주의와 자유주의가 충돌하고 있는 상태이며, 미래는 혁명을 통하여 그것을 뒤집어엎으면서 등장할 새로운 상태일 것이다. 이런 뜻에서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이어지는 <사회계약론>을 통하여 혁명과 미래를 그리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실은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앞쪽은 공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정의하고 있고, 뒤쪽은 시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정의하고 있다. 관점만 서로 다를 뿐, 대상과 내용은 동일하다.

 

자연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사회와 역사를 만든다. 인간은 자연을 창조할 수 없다. 자연을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을 뿐, 그것을 창조할 수는 없다.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사회와 역사뿐이다. 자연상태에서 출발하여 사회를 구성하고, 부정하고, 재구성하면서 역사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뿐이다. 루소가 인간본성론과 역사발전론을 융합하고자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자기보존 본능과 공감 본능을 부여한 데 이어서 루소는 인간에게 자유 능력과 자기향상 능력을 부여한다. 여기서 앞쪽의 두 본능이 사회적 동물의 존재조건에 해당된다면, 뒤쪽의 두 능력은 역사적 동물의 존재조건에 해당된다. 루소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어떤 동물에서나 정교한 기계만을 보게 된다. 그 기계가 자기 힘으로 나사를 돌리고, 자기 몸을 망가뜨리거나 고장을 낼 것 같은 모든 상황에서 어느 정도 자기 몸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자연은 그 기계에 감각이라는 것을 주었다. 나는 인간 기계 속에서도 분명히 같은 것을 인정한다. 다만 짐승의 행동에 있어서는 자연만이 모든 것을 행하는 데 비해 인간은 자유 능력에 근거해서 자연의 행동에 협력한다는 점이 다르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본능에 따라서, 또 한편으로는 자유의지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러므로 짐승은 그렇게 하는 일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자기에게 명령되어진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인간은 가끔 손해를 무릅쓰면서라도 그것을 범하게 된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매우 특수한 또 하나의 특질이 존재한다. 그것은 자기향상 능력이다. 즉 환경의 도움을 빌려 여러 가지 능력들을 차례차례 발전시키는 특질이다. 그에 비해 동물은 몇 개월 뒤에도 처음 그대로의 상태에 있으며, 또한 그 종은 천 년이 지나도 첫해에 있었던 그대로의 상태에 있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61~62)

 

그런데 루소를 따르자면, 인간의 자기향상 능력이 역사를 직선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것이 루소의 자기향상 능력이 담고 있는 수수께끼이다. 역사의 발전은 하나에 하나를 더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역사는 자연-일탈-자연회복또는 본성-변질-본성회복식으로, 나선형으로, 진행된다. 자연상태는 과거의 역사이며, 변질상태는 현재의 역사이다. 혁명을 거친 뒤에 오게 될 미래상태는 다시 자연을 회복한 상태로 될 것이다.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면서 살아가는 상태이다.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문명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의 원시공동체를 인류 역사에서 가장 행복하고 안정된 시기또는 인간들이 본성에 따라서 자유롭고 건강하고 선량하게 살면서, 상호 독립 상태에서 교류의 즐거움을 누렸던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사유재산제를 도입하는 첫 번째 사회계약을 맺으면서부터 인류에게는 일탈의 역사가 시작된다.

 

인간능력 발달의 이 시기는 원시상태의 태연자약과 [문명상태의] 건드릴 수 없는 자존심의 중간에 위치하여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정된 시기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잘 생각하면 할수록 이 상태가 가장 혁명이 일어나기 어려운 상태이며, 인간에게 가장 좋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공통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무엇이 불행한 우연에 의해 생겨나서 처음으로 이 상태에서 일탈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 보잘것없는 움막으로 만족하고 있는 한, 또 그들이 가시나 생선뼈로 가죽옷을 꿰매고, 새의 깃털이나 조개껍질로 몸을 장식하고, 몸에 갖가지 색을 칠하고, 활과 화살을 완성하거나 치장하고, 잘 드는 돌로 여러 개의 고기잡이 통나무배와 보잘것없는 악기류를 만드는 데 그치고 있는 한, 다시 말해 그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몇 사람의 협력만을 필요로 하는 기술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동안에는, 그들은 자연적 본성이 허락하는 대로 자유롭고 건강하고 선량하게 살면서, 상호 독립 상태에서 교류의 즐거움을 계속 누렸던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간이 다른 인간의 도움에 의존하게 되면서, 한 사람을 위해서 두 사람의 협동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평등은 사라지고 사유(私有) 관념이 개입되어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광대한 삼림은 예쁜 들판으로 바뀌어 사람들의 땀으로 그 들판을 적셔야만 했고, 마침내 그곳에는 수확과 함께 노예제와 빈곤이 싹터서, 그것이 커져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야금(冶金)과 농업의 발명이 이 커다란 혁명을 만들어낸 기술이었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08~111)

 

여기서 우리는 왜 루소가 문명비판적 입장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역사발전론을 따르자면, 첫 번째 사회계약이 탄생시킨 문명사회는 자연상태를 전쟁상태로 전환시켰으며, 인간의 본성도 변질시켰다. 노동의 고생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이 모든 불행은 인간의 자기향상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문명의 역설이다.

 

이 특유한, 게다가 거의 무제한의, 자기향상 능력이 인간이 지닌 모든 불행의 원천이라는 것, 또한 평온하고 죄 없는 나날이 지나갈 그 원초적인 상태에서 시간의 힘으로 인간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이 능력이라는 것, 또 인간이 지닌 지식의 빛과 그늘, 악덕과 미덕을 여러 세기의 흐름 속에 꽃피워서 마침내 인간을 자기 자신과 자연에 대한 폭군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야말로 바로 이 능력이라는 사실, 이런 일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62)

 

루소가 볼 때, 지금까지 인류문명의 역사는 불평등이 점점 더 심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왜냐하면 모든 변화가 첫 번째 사회계약의 틀 안에서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혁명을 통하여 그 틀 자체를 깨부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루소는 절대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18세기 프랑스를 바로 그런 단계로 보았다. 이런 이유로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사회계약론>을 써서 폭력혁명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주창한다. 그리고 그의 책들이 실제로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지렛대로 작동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바스티유 장악, Jean-Pierre Hou&euml;l, 1789년

 

현명한 입법자들이 모든 노력을 다했음에도 국가 상태는 언제나 불완전했다. 그것은 국가 상태가 거의 우연의 소산이었으며 처음부터 시작이 나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난 결점들이 그에 대한 대책을 시사하면서도 조직의 근본적 결함을 보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뒷날 훌륭한 건물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가 되는 대지를 깨끗이 치우고 모든 낡은 건축재료들을 멀리했어야 할 텐데, 사람들은 잘못 지어진 건물에 계속 수리만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법률과 소유권의 설립이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그 다음으로는 통치자의 직위 설정이, 마지막으로는 합법적 권력으로부터 전제적 권력으로의 변화가 불평등을 키운다. 그에 따라 첫 번째 시기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상태가 용인되고, 두 번째 시기에는 강자와 약자의 상태가 용인되며, 세 번째 시기에는 주인과 노예의 상태가 용인되는 것이다. 이 세 번째 시기가 불평등의 마지막 단계이자 다른 모든 시기가 결국은 귀착하는 한계로서, 마침내는 새로운 여러 변혁이 정부를 완전히 해체하든가, 그것을 합법적인 제도에 접근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진보의 필연적 과정이다.
[전제주의 시대에는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이 모든 것을 잡아먹어서, 백성은 이미 통치자와 법률을 가지지 않게 되며 다만 참주만을 갖게 된다. 전제군주가 입을 열자마자 그곳에는 고려할 덕도 의무도 없어지고 극도로 맹목적인 복종만이 노예에게 남겨진 유일한 미덕이 된다.
이것이 불평등의 마지막 도달점이며, 순환을 멈추고 우리가 출발한 기점에 다다르는 극한점이다. 여기서 개인은 다시 평등해진다. 왜냐하면 이제 선()의 관념이나 정의의 원리가 소멸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다만 가장 힘 있는 자의 법에만 따른다. 따라서 하나의 새로운 자연상태에 환원되고 있는 것인데, 이 자연상태는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았던 자연상태와 다르다. 출발점의 자연상태는 순수한 자연상태이지만, 방금 말한 새로운 자연상태는 과도한 부패의 결과이다. 게다가 이 두 가지 상태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며, 정부를 세우는 사회계약은 전제주의로 인하여 심하게 파기되어 있으므로 군주를 죽이거나 왕위에서 내쫓거나 하는 폭동도 벌률적인 행위로 되어버린다. 다만 힘만이 그를 쓰러뜨린다. 모든 일이 이처럼 자연의 질서에 따라 행하여진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20~121, 129, 133~134)

 

루소가 살았던 18세기 프랑스의 역사발전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된 것은 절대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이었다. 그 변혁은 로크와 자유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봉건주의 기득권 세력과 자본주의 신흥 세력의 타협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변혁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것이다.

 

미개인과 문명인은 심성과 성향이 근본부터 매우 달랐으므로, 한쪽에게는 최고의 행복이 되는 것이 다른 쪽에게는 절망의 원인으로 된다. 미개인은 다만 안식과 자유만을 호흡하고 살면서 노동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그와 반대로 사회인은 언제나 활동적이며, 땀을 흘리면서 돌아다니고, 더 힘든 일을 찾아 계속 마음을 쓴다. 그는 자기가 미워하고 있는 권력자나 경멸하고 있는 부자에게 아첨하면서 그들에게 봉사하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비천함과 그들의 보호를 으스대고 자랑한다. 그리고 자기의 노예상태를 자랑하고, 그와 같은 명예를 갖지 못난 사람들을 멸시한다.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135)

 

그렇다면 문명인이 노예상태를 벗어나서 다시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던진 문제였으며, 뒤에 <사회계약론>을 통하여 대답을 구하고자 했던 문제였다. 루소가 찾아낸 대답을 미리 한 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기존의 사회계약을 폐기하고 다시 한 번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