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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꺼리

[읽을꺼리] 좌충우돌 수영이 아빠 되기_ (9) 젠장!

수영이 아빠가 글 제목을 욕으로 써왔어요! 편집자는 당황했답니다. [편집자주]

 

젠장!

 

조경석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서울 회원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지금 10X동에서 피리 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온라인수업 중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슬픈 연주로 인해 심리적 부담(!)을 호소하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10X동 피리를 연주하시는 분께서 이점 양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

 

  어느 비 오는 날 오전,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을 듣다가 빵 터졌다. 수영이가 아빠가 왜 이러나 빤히 쳐다본다. 나야 웃었지만, 당사자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이해가 된다. 아니! 100% 공감이 간다. 피리 연주를 한 10X동 누군가를 탓하기도 그렇다. (순전히 짐작이지만) 비 오는 날 막걸리와 파전에 이끌리듯이 그냥 피리를 연주했을 뿐인데 무슨 죄가 되겠나. 피리 불면 뱀 나온다는 밤도 아니고. 다들 길어지는 집꼭생활에 지치고 예민해져 있다. 여하튼 관리사무소의 기습공격으로 끽끽거리며 웃었지만, 결코 웃고만 있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작은 바이러스로 우리 삶과 일상은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다르게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 젠장!

 

장마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최근 수영이랑 실랑이가 많아졌다. 얼마 전까지 50일 넘게 비가 내렸다. 잠시 해가 비치나 했더니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태풍까지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그 기간 수영이가 바깥에서 놀아본 횟수는 손에 곱을 정도다. 이전에 아장아장 걷던 수영이가 아니다. 집안이든 집 밖이든 두 발로 서면 하염없이 무조건 뛴다. 얼마나 나가서 뛰어다녔던지 햇볕에 타서 두 다리가 새까맣다. 그런데 한참 동안 뛰어다니지 못했으니 매일 실랑이다. 나가자는 24개월 혈기왕성한 아들과 못 나간다는 늙은 아빠의 대결이다. 이젠 두 살 됐다고 말도 안 듣는다. 게다가 힘까지 세져서 몸으로 막는 것도 버겁다. 동화책과 장난감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켜줬다. 36개월까지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노출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마냥 길어지는 집꼭 생활에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효과(?)는 컸다. 이제 수영이는 나가자고 보채지 않는다. 대신 아침에 눈을 뜨면 토토()! 토토()!’를 외친다. 아들과 아빠가 사이좋게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를 본다. ‘아르~! 아르~! 와타시와 겡끼!’ 아빠는 주제가를 따라 부르고, 수영이는 발을 구르면서 박수를 친다. 수영이가 더 크면 아빠와 세대를 뛰어넘어 덕질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실랑이도 없고, 평화다! 근데 뭔가 개운치 않다. 비상한 시국에 비상한 대책이긴 한데 . 뛰어놀기 좋은 날에도 수영이가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으면 어쩌지?

 

요즘 수영이는 이웃집 토토로에 푹 빠져 산다. ‘아르~꼬! 아르~꼬! 와타시와 겡끼!’

 

  어린이집 입소도 연기됐다. 애초엔 9월부터 동네 어린이집에 다닐 거였다. 나도 복귀를 슬슬 준비하고. 근데 어린이집이 문 닫았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긴급돌봄만 운영된다. 자리가 있어도 신규 입소 없다. 언제 다시 어린이집이 열릴지도 기약이 없다. 개원 일정은 순전히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결정된단다. 또 젠장! 어린이집 입소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수영이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보육교사이면서 세 아이 엄마인 조카(수영이에겐 사촌 누나^^:)가 지침을 줬었다. ‘수영이가 자기 의사를 말할 수 있을 때 어린이집에 보내세요라고. 어린이집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수영이가 엄마·아빠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컸을 때, 보내라는 뜻이었다. 근데 수영이는 아직 몇몇 단어를 말할 뿐이다. 게다가 아직 기저귀를 사용하고, 밥도 뛰어다니는 걸 잡아서 먹여야 한다. 어머님과 아버님도 저 어린 것을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내냐고 반대하셨다. ‘우리나라 어린이집이 모두 뉴스에 나오는 그런 어린이집만 있는 것만 아니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웃들이 추천한 어린이집을 보낼 거라며 설득하고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일하는 엄마·아빠가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근데 그마저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또다시 젠장이다.

 

바깥에 나가더라도 우산과 마스크가 필수품이 됐다.

 

  며칠 전 수영이 재우고 넷플렉스에서 비밀의 숲2’를 정주행했다.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식당에 우르르 몰려와서, 시끄럽게 떠들며 뒤풀이를 하는 장면을 보다가 울컥했다. 그래 저럴 때가 있었지. 좋은 사람 만나서, 좋은 음식에, 좋은 술을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냈던, 지금은 낯선 풍경이 된 일상이 있었다.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지금 모습과 비교해보면 현실성이 없다. 이젠 누구도 지나가는 아이가 이쁘다고 다가오지 않는다. 대신 멀찍이 떨어져 아이고 이쁘다한마디 하며 지나간다. 이런 게 일상이 돼 버렸다. 텔레비전에나 나오는 그런 일상은,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