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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PRISM] 동아시아 노동운동 컨퍼런스 참가기 (1)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PRISM> 꼭지는 노동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교육원 운영위원인 홍명교 동지가 동아시아 노동운동 컨퍼런스에 다녀오신 후기를 싣습니다.  [편집자주]

 

동아시아 노동운동 컨퍼런스 참가기 (1)

 

홍명교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운영위원, 플랫폼C 활동가

 

지난 9월 말 대만 타이베이에서 동아시아 노동운동 컨퍼런스와 활동가들의 워크숍이 열렸다. 첫날에는 큰 규모의 컨퍼런스 행사가 열렸고, 뒤이은 이틀 동안에는 집중적인 토론이 별도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나를 비롯한 한국 활동가 7~8명은 이 뜻깊은 일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

 

9월 22일 ‘동아시아 노동운동 : 정치적 변화 속에서 불평등에 맞서기 위한 조직화’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억압적인 정권, 정체된 임금, 직장 내 차별, 파괴적인 기술의 도입, 착취적인 게스트 노동자 프로그램에 맞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노동운동은 점점 더 다양하고 유사한 도전에 어떻게 직면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오늘날 동아시아 각국의 노동운동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탐색하고 소개하는 발표들이 이뤄지는 대규모 토론회였다. 조직화, 단체교섭, 파업, 정치 전략 분야의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오늘날 동아시아 노동자들이 직면한 상황과 그 대응들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날 컨퍼런스는 총 5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는데, 첫 번째 세션은 ‘아시아에서의 노동 저항과 글로벌 신자유주의’ 주제로 전체 정세와 주체의 조건을 분석하는 발표들이 있었고, 두 번째 세션 ‘탄압에 대한 대응’이란 주제 하에 홍콩과 중국대륙, 일본 노동자운동의 전체 상황이나 사례가 소개됐다. 세 번째와 네번째 세션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정세에 집중했는데, ‘빅테크 기업의 권력과의 투쟁’, ‘주변화된 노동자의 조직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션에서는 오늘날 동아시아 각국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의 현주소와 과제를 간접적으로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각 세션별로 3~4개의 발표들이 있었으니 하루를 꽉 채워 동아시아 노동운동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나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사진=홍명교)

 

기조 발제격의 세 발표는 ① 신자유주의 이후 아시아 노동운동의 도전 과제가 무엇인지, ② 1990년대 이래 중국 노동자계급의 형성과 투쟁은 어떻게 전개됐고 이후의 전망은 어떻게 되는지, ③ 그리고 중국의 해외투자와 동남아시아 노동자 및 환경에 대한 그것의 영향은 어떠한지를 다루었다. <중국의 해외투자와 동남아시아 노동자 및 환경에 대한 그것의 영향>에 대한 발표를 맡은 활동가는 2013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야심찬 계획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투자된 금액은 당초 예상만큼 많지 않으며, 많은 프로젝트가 예상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중국 국무원은 “해외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은 현지 법률을 준수하고, 투명성과 평등에 기초하여 계약을 입찰하고, 현지 직원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식의 구속력 없는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를 준수하지 않고 현지 노동자들의 정서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동남아 진출 중국 기업에서의 점증하는 쟁의에 대한 중국 정부와 기업들의 대응은 자국에서 파견한 중국인 노동자들과 현지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분리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것에 있는데, 이로 인해 두 집단 사이에서는 긴장과 불신이 심화되고 있기도 하다. 발표자는 ① 현지 노동자와 중국인 노동자 간 연락·지원·연대를 통해 노조 주도의 캠페인 기획, ②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해외 중국 기업의 약한 고리를 찾아 구매자와 소비자의 압력을 통해 변화 시도, ③ 법률 위반 신고 및 캠페인을 통한 기업 책임성 강화, ④ 중국의 금융기업들에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을 높이라는 캠페인을 통한 압력, ⑤ 국제연대 등을 전략적 과제로 제안했다.

 

두번째 세션에서는 홍콩과 일본, 중국대륙 노동자운동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발표들이 공유됐다. 세 사례의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면 국가적 차원의 노동운동 탄압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홍콩 노동운동가들은 엄혹한 탄압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리척얀 전 사무총장, 캐롤 응 전 주석 등 홍콩 노동운동을 이끌던 대표적인 활동가들이 구속된 상태이며,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직공맹(홍콩노총)은 해산했다. 이로 인해 수십명의 조직가들이 활동 공간을 상실했고, 절반 정도는 여러 노동조직들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많은 노동조합들은 리더십의 부재 상태를 경험하고 있으며, 다방면에서 자원의 부족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홍콩의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종언 고했다’고 봐야 할까? 발표에 나선 활동가는 우선은 재정과 조직화, 내러티브를 통해 노조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탈중앙화와 탈시설화, 자발성 기제를 통해 조직화의 새로운 형식을 발명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홍콩 노동운동은 결코 끝나지 않았는데, 2022년 푸드판다 노동자들의 이틀 파업에서 알 수 있듯, ‘모순이 있는 곳’에서는 저항이 다시 조직화되기 마련이다. 많은 활동가들이 떠나거나 남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지만, 암울한 시기를 넘기 위해 홍콩에 남아 미래를 모색하는 이들과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세번째 ‘빅테크 기업의 권력과의 투쟁’ 세션에서는 ‘미국 테크기업 노동자들의 조직화 사례’, ‘대만의 음식배달 라이더 노동자 사례’, ‘한국의 음식배달 섹터에서 활약하는 두 노동조합의 비교 연구’, ‘구글 일본법인 노동자들의 해고 반대 투쟁 사례’ 등이 소개됐다. 전통적인 산업 노동자운동과 동떨어진 IT노동자들과 플랫폼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어떤 특징을 보이고, 노동의 불안정성과 유연성으로 인해 야기된 조직화의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들이 공유됐다. 

네번째 ‘주변화된 노동자의 조직화’ 세션에서도 여러 국가들의 사례가 소개됐는데, 한국 내 여러 돌봄 노동자조직들의 특성과 활동 방식의 차이에 관한 발표, 대만 내 제조공장과 어업에서 종사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상황과 조직화 전망, 그리고 일본의 지역 페미니스트 운동 공간, 일본 언론사 내 성폭력에 맞선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운동 등 사례가 공유됐다. 

 

마지막 세션의 첫 발표에서는 한국의 서울교통공사노조와 부산지하철노조가 제각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한 방식과 그후에 내부적으로 맞닥뜨린 각기 다른 반응을 비교하면서, 그것이 어떤 것에서 비롯됐는지 분석하는 내용이 공유됐다. 두번째 발제에서는 2022년 11월에 전개된 중국 백지운동의 전개 양상과 특징을 소개하고, 그것이 일정하게 대도시 청년들과 공업 도시 노동자계급의 저항으로 분리됐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그러한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사회적 저항을 위한 계급 기반의 내러티브가 필요하다는 점, 풀뿌리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역설하는 발표가 공유됐다. 마지막 발표는 대만 노동운동의 상태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는 대만 노동체계의 취약한 제도적 특징(취약한 연맹조직, 상대적으로 가입률이 높지만 노조 인식이 높지 않은 지역일반노조)에서 연유했다. 흔히 대만 사회와 남한 사회의 현대사가 갖는 상대적인 유사성으로 인해 노동체계 역시 유사할 것이라고 간주된다. 두 나라의 노동조합 제도는 공히 기업별 노조 중심이긴 하지만, 차이가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민조노조운동 역량에도 차이가 있다. 대만의 활동가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사진=홍명교)

 

우리는 따로 떨어져 발전한 동아시아 각국 노동운동을 ‘역사적으로 맥락화’하고, 연결해나가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아마도 이번 컨퍼런스는 그런 여정의 기초적인 단계들 중 하나일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 노동운동은 미미하게나마 상호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런 실천들을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연대는 대륙을 가리거나, 단지 권역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국제적 시야’라는 감각을 키우기 위해 당장 인근에 있는 경계들부터 넘나들며 국제주의 실천의 감각을 확장해야 한다. ‘동아시아’를 방법으로 삼아 국제주의를 사회운동의 이념이자 태도로 수용해야 한다. 바로 그럴 때,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거나, “국경을 넘어선 노동운동의 연대”라는 구호가 단지 구호에서 그치는 공문구가 아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