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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마디

[단!마디] 지리산 역사기행을 다녀오다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웹진 [e-품]의 <단!마디> 꼭지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단병호 대표(민주노총 지도위원, 17대 국회의원)의 노동 및 사회현안에 대한 논평과 제언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지리산 역사기행을 다녀오다

 

2022. 6.

 

지난달 한국 현대사 역사 기행으로 지리산을 다녀왔다. 역사 기행을 기획한 손호철 선생과 김세균, 최갑수, 박상환, 김철홍, 김정한, 최풍만 선생 등 여덟 명이 동행했다. 이번 역사 기행은 거창 양민학살 추모공원에서부터 하동, 구례, 남원을 거쳐 대전과 공주 송장배미에까지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 현장을 둘러보는 꽤 긴 여정이었다. 그래서 원래 23일로 준비했던 일정도 34일로 하루가 늘었다.

 

손호철 선생은 지난 1년 내내 한국 현대사 역사 기행을 하느라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다. 한국일보와 프레시안에 연재도 되었고, 최근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이란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동학과 일제식민지,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 유신과 광주 민중항쟁, 6.10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에 이르기까지의 현대 정치사를 총망라해 제주, 호남, 영남 세 권역으로 묶었다. 이번 기행은 한국 현대사 기행의 출간을 앞두고 그동안 기행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함께 마무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년에도 손호철 선생 등과 지리산 역사 기행을 23일로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는 이현상과 김개남 등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정이 없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현상이 사살된 빗점골 이현상 바위를 찾아 간소하게나마 준비해간 제수(祭需)를 차려놓고 묵념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빨치산이 처음 입산해 선서했다는 뱀사골 단심폭포도 찾아보았다. 또 빨치산이 신문을 발행했던 비트로 알려진 뱀사골에 있는 석실도 둘러볼 수 있었다. 뱀사골을 떠나올 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오직 그 한 마음으로 처절하게 몸부림치다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의 피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해 발길이 무거웠다.

 

교룡산성을 찾았다. 교룡산성은 남원시 외곽에 위치한 조그마한 산성이다. 산성 입구에는 金開南東學農民軍駐屯地라고 쓴 나무 표지목이 쓸쓸하게 산성을 지키고 있다. 김개남의 본명은 기범또는 영주로 알려지고 있다. ‘開南은 봉기 이후 남쪽의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뜻으로 개명했다. 봉건왕조가 아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의 열망을 읽을 수 있다. 김개남은 전봉준과 함께 동학혁명군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그런데도 김개남에 대한 평가는 전봉준에 비해 인색하다. 지금부터라도 그에 대한 온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쓸쓸히 서 있는 표지목 앞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꺾인 비운의 혁명가에게 묵념을 올렸다.

 

이외에도 많은 곳을 둘러봤다. 토벌군이 무고한 양민 517명을 무참히 살해한 박산 학살장소’, ‘의신마을 지리산역사관’, ‘연곡사 빨치산추모비’, ‘화엄사 차일혁 추모비’(차일혁은 이현상의 시신을 수습해 승려에게 독경을 하게하고, 세 발의 총성을 울려 최고의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렀다. 또한 화엄사 소각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절을 태우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도 부족하다라며 소각 명령을 거부했다.), 구례경찰서 안종삼 공적비’(안종삼은 1950년 구례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에 이승만 정부의 보도연맹원 처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480명 전원을 석방했다. 이 일로 인민군이 점령하고 다시 국군이 수복하는 과정에서도 구례에서만은 피의 보복이 없었다) ‘뱀사골역사관’, ‘남원동학기념비대전 산내골령골 보도연맹학살지’, 공주 송골배미 동학 학살지등을 둘러보았다.

 

한반도를 일러 금수강산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의 한 자락만 들춰보면 갈기갈기 찢기고 짓밟힌 민중의 생채기가 드러난다. 수많은 역사가 과거의 창속에 갇혀 있다. 승리한 역사도 실패한 역사도 보듬어 안고 가야 할 우리의 역사다. 아픈 역사라고 해서 실패한 역사라고 해서, 그 역사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다고 해서 애써 보지 않고 또 애써 잊어버리려 한다면 고통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아픈 역사를 마주한다는 것이 힘든 일이었지만, 역사를 이해하고 공부한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역사란 먼 과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찰나의 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역사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좌표다. 그래서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것 같다.

 

불현듯 노동운동을 하는 간부나 활동가들이 이런 역사 기행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역사를 지면을 통해서만 이해해 왔다. 지금도 150권이 넘는 평전과 자서전을 소장하고 있다. 한 번 이상 읽은 책도 드물지 않고, 전태일 평전은 세 번을 읽었다. 평전과 자서전은 그 한사람 한 사람의 역사다. 나에게도 이런저런 어렵고 힘들었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비틀거리지 않고, 샛길로 빠지지 않고 예까지 올 수 있게 한 힘은 그곳에 있었던 듯싶다. 역사의 현장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며 배운다면 더 바람직하고 확고한 역사 인식을 갖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 날 손호철 선생에게 제안했다. “23일 정도의 역사 기행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역사 기행 안내 요청이 있으면 할 수 있겠느냐. 손호철 선생은 프로그램은 생각해 보겠다”며 아내 요청이 있으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답했다. 노동자가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 기행은 간부나 활동가의 의식과 역량을 강화하는 데 승수가 높은 투자가 될 것은 분명하다.